기업 회계기준 제정 기관인 회계연구원이 최근 증시안정기금의 회계처리 방식을 갑작스레 변경한 것은 시장에 불확실성을 던져준 사례로 눈여겨볼 만하다. 회계연구원은 올해부터 증권사 등 금융회사와 상장기업이 출자한 증안기금에 들어있는 주식을 장기 보유 개념의 투자 유가증권으로 분류,당기손익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했다. 금융감독원도 이에 맞춰 증권업 감독 규정을 바꿀 계획이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지난 4,5월 주가 상승으로 얻은 증안기금 평가이익을 실적에 반영하지 못하게 됐다. 증시 안정이란 명목 아래 지난 90년 조성된 증안기금은 한때 규모가 4조5천억원에 달했었다. 96년 청산을 결의한 증안기금은 이후 꾸준히 상환돼 현재 원금이 5천억원가량 남아있다. 사실 증안기금은 정부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조성된 일종의 '편법 자금'이다. 기업과 금융권은 정부 시책에 따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돈을 냈다. 기금에 출자한 상장사는 주가 하락으로 상당한 고통도 감수했다. 그런데 시장 상황이 좋아져 출자금이 '효자' 역할을 할 만하니까 이익에 반영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출자자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는 일이다. 더욱이 정부는 지난 4월 대내외 악재로 증시가 곤두박질치자 올 5월 말 청산키로 했던 증안기금 존속 기간을 슬그머니 1년 연장시켰다. 이 과정에서도 증권사 등 출자자 의견은 거의 무시됐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번 조치가 증권사 실적에 영향을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투자자들까지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증권사의 4,5월 실적은 이미 공시된 상태다. 증권사들은 회계기준 변경으로 줄어든 순이익에 대해 별도 정정공시를 내지 않고 1분기(4∼6월) 실적에 반영할 방침이다. 증권주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1분기 실적이 공시되는 이달 중순께 뜻밖의 순익 급감에 당혹해 할 것이 뻔하다. D증권사 임원은 "의견 수렴도 없이 기금 청산을 1년 연장시킨 것도 모자라 10년 이상 적용해왔던 회계방식을 갑자기 바꾸라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예측 가능한 정책을 펴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당국은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때다. 이건호 증권부 기자 k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