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자식 교육
“자식을 가르치지 않음은 아비의 허물이요, 가르침이 엄하지 않다면 스승의 게으름이다. 아비는 가르치고 스승은 엄한데도 학문을 이루지 못함은 자식의 죄다(養子不敎父之過 訓導不嚴師之惰 父敎師嚴兩無外 學文無成子之罪).” 북송(北宋)시대 재상 사마광의 ‘권학문’ 중 첫 부분이다. 자식을 가르치는 건 아버지의 의무고, 스승은 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산 때문에 골육상쟁을 초래하는 보도를 종종 접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패륜행위가 일어나는지 개탄하며 자식 교육을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교육열이 높다. 부모들은 자식 교육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교육열이 한국의 성장을 뒷받침해 왔다고 본다. 그러나 요즘은 교육이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입시는 전쟁터로, 학교와 학원은 지식을 사고파는 장터로, 스승은 지식을 파는 사람이 되고 있다. 스승이 엄격해질 수 없다.

우리는 19세기에도 교육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 내용이 실용적이지 못해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라를 잃었다. 무엇을 가르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은 실용이 지나쳐서 기능적인 교육, 즉 입시와 취업을 위한 공부에 치중하고 있다. 분업도 지나친 듯하다. 자식 교육은 학교나 학원에 떠맡기고, 부모는 돈만 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도덕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도덕 교육의 일환으로 봉사활동 등에 가점을 주고 있으나, 입시를 위한 점수 따기가 되고 있다. 유대인은 모세5경 등 율법을 자식에게 가르침으로써 유대인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율법은 바로 도덕률이다. 수천년간 나라 없이도 민족을 지탱할 수 있었던 비결이 도덕 교육에 있는 것이다.

삼성 현대 같은 거대한 조직이 가능했던 것도 ‘도덕과 예’라는 교육이 기저에 있어서가 아닐까. 상사가 마음에 안 들어도 대들지 않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맞추려는 노력도 ‘예의 힘’이 아닐까.

우리 전통교육은 착하게 사는 걸 중시했다. 명심보감, 소학 등은 모두 도덕과 관계가 있다. ‘베푼 집안에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말이나 인과응보의 교리를 철석같이 믿었다. 제삿밥도 나눠 먹었고 잔치는 베푸는 장소로 생각했다. 생활 속에 도덕 교육이 배어 있었다.

부모의 역할이 필요하다. 도덕은 모범을 보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승이 엄할 수 있는 환경도 부모가 조성해 줘야 한다. 밥상머리 교육부터 시작해야겠다. 가훈도 정해 보자. 패륜문제가 남의 일 같지 않다.

김상규 < 조달청장 skkim61@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