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관치금융은 완성되었는가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금융의 삼성전자가 단기간에 나올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솔직한 표현이다. 금융허브나 동북아금융중심 정책을 사실상 폐기한 것도 그렇다. 문을 닫아야 할 정책금융기관들을 부산으로 끌고 내려가 영구기관으로 만들겠다며 부산당(黨) 의원들까지 설치는 판국이다. 기왕에 한국에 들어와 있던 외국 금융사들까지 모두 짐을 싸들고 나가는 중이다. 증권시장에서도 신규 상장기업의 고고성이 끊어진 지 오래다. 주가가 오르건 내리건 관심 있는 국민들이 없으니 증권업도 기아선상이다.

어제도 한국금융연구원 주최로 ‘글로벌 금융’ 토론회가 열렸지만 이런 세미나로 금융산업이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비 올 때 우산 뺏지 말라는 금융위원장의 말씀부터가 그렇다. 금융의 본질은 돈을 떼이지 않고 빌려주는 것이다. 혹여 떼일 만하면 빌려준 돈을 빨리 회수해야 한다. 그게 예금자를 보호하는 금융중개업의 원칙이다. 샤일록이 그랬듯이 부실 대출자의 살덩어리를 베어낼 각오까지 해야 비로소 금융산업은 존립하는 것이다. 유대인 금융이 그냥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금융위원장부터 이를 부정하고 있다. 금융규칙이 작동할 리 없다.

금융산업 발전을 강구한다는 수많은 논의들이 있지만 대부분이 은행을 규제하고 건전성을 감독하며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는 등의 덩어리 규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어설피 내세우는 절차상 구색들이다. 그런 토론회는 백번 개최해봐야 헛일이다. 지금은 금융산업을 떠받치는 기업 구조조정 시장도 죽었고 인수합병(M&A) 시장도 없다. 기업구조조정 비즈니스를 국가기관인 정리금융공사와 산업은행이 온통 장악하고 있는 결과다. M&A는 서울 민사합의 50부라는 사법기관이 주무르고 있다. 역시 시장이 형성될 리 만무하다. 돈 흐름의 가치 사슬을 따라 금융중개 회사들이 빼곡하게 생겨나야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

결국 몇 개 대형은행만 남아 낙하산 회장님들을 모시고 부동산 수수료와 이자 뜯어먹으며 명맥을 유지하는 형세다.

박근혜 정부는 결국 금융산업을 포기한 것인가. 아마도 그렇게 봐야 할 것 같다. 은행들은 온통 부패와 부조리요, 해외 진출은 엉망이며, 창조는 고사하고 담보 잡고 대출해주는 것도 허겁지겁이다. 금융위는 얼마 전 ‘금융비전’이라는 것을 발표했지만 은행 간 계좌이체에 불이익 없도록 규제를 몇 건인가 풀어보겠다는 수준이다. 금융허브나 금융중심지라는 헛구호를 버린 것이 그나마 돋보이는 정도다. 박근혜 정부는 서비스산업 육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서비스의 중심축인 금융산업은 이다지도 형편이 무인지경이다.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며 유통분야 일자리도 틀어막아버린 것이 경제민주화다. 금융도 안되고 유통혁신도 틀어막았으니 서비스산업 일자리는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 이 나라에 이다지도 생각하는 머리가 없다. 어리벙벙한 장관들은 얹혀 있을 뿐이고 관료들은 알토란같이 규제의 텃밭을 일구고 있다.

금융발전의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대통령이 금융업자 대표들과 모임을 갖는 장면부터 떠올려보라. 명색은 업자 대표들이지만 은행연합회장도 생명보험협회장도 모두 관료 출신이다. 증권거래소 이사장조차 관료 출신이다. 여신금융협회장도 관료다. 금융투자협회장만이 유일하게 업자 출신이다. 이 역시 언제 바뀔지 알 수 없다. 요즘은 업계 스스로 관료들을 모셔 가려 안달이다. 사람이 없어서? 그럴 리가 있나. 관료를 모셔 가야 목줄을 쥐고 있는 대관(對官) 업무가 돌아간다. 그래서 관료 출신에 대한 수요는 급팽창이다. 아니 관료들은 치밀한 규제 덕분에 은퇴 후에도 충실하게 생계를 보장받는다. 금융산업은 그중 최악이다. KB금융지주 회장도 농협금융지주 회장도 관료 출신이라면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 한다. 지금 IBK기업은행장 자리에도 관료들이 낙하산을 꾸리고 있는 중이다. 업자 출신 조준희 행장은 풍전등화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