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턴우즈에 전 세계 44개국 대표가 모였다. '유엔 화폐금융 컨퍼런스'라고 이름이 붙은 이 회의에서 미국은 사실상 자신의 달러를 전 세계 기축통화로 격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 회의에서 문제가 된 것은 영국대표로 참석한 당시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즈 경이 마련한 '케인즈 플랜'이었다.

케인즈 경은 '국제청산동맹'이라는 이름의 전 세계적 중앙은행을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이 가지게 될 거대한 힘을 견제하기 위한 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안은 부결됐고 미국은 자신이 발행하는 달러에 대해 금으로의 태환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순항하던 브레턴우즈 시스템은 사회보장지출을 증대시킨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과 월남전으로 인한 전비지출의 증가로 인해 미국이 달러를 남발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달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자 세계 각국은 달러를 팔아버리고 금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이 압력을 못 견딘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정지 선언을 하면서 달러는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달러 이외에 국제결제통화의 대안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고 결국 고정환율제 대신 변동환율제로 전환하면서 달러의 기축통화지위는 계속 유지됐다. 변동환율제 하의 브레턴우즈 체체가 개막된 것이다.

얼마 전 런던 G20 회담이 열리기 직전 중국의 자오 중앙은행 총재는 작심을 한 듯 달러중심체제에 대한 도전적 발언을 했다. 달러 대신에 IMF가 발행하는 SDR(특별인출권)를 기축통화로 사용하자는 주장이었다.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비판을 받은 미국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자 1940년대 케인즈 경이 달러를 공격하던 논리를 21세기 버전으로 부활시킨 도발적 주장이었다. 충격을 받은 미국은 대통령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가 모두 나서서 이 발언을 진화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G20회담 후에는 가이트너 재무장관을 중국에 특사로 보내서 중국 달래기에 나섰다. 사실 작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함께 시작된 금융위기 직후 현행 달러 중심의 브레턴 우즈체제에 대한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았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제시된 주장이었고 중국은 중앙은행 총재의 발언 이후 브릭스회담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까지 했다. 사실 중국을 이렇게 키운 것은 미국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미국의 경상수지적자는 GDP의 5%를 훌쩍 넘었고 미국적자의 25%를 중국이 벌어갔다. 소위 '글로벌 임밸런스' 현상 덕분에 달러 환산 외환보유고를 2조달러 이상 쌓아 놓은 중국은 이제 미국에 대해 큰소리를 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해 공격을 하던 중국이 다시 미국국채를 매입하기 시작하더니 7월 말 워싱턴에서 열린 중 · 미 간 '전략 및 경제대화'에서는 미국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만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 위기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정돼 가는 모습이 관찰되면서 달러에 대한 공격 수위를 낮추기 시작한 것이다.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는 미국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일단 수면 아래로 잠적할 것일 뿐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수면위로 부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따라서 우리도 향후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를 해야 한다. 우선 금모아 수출하기 이후로 너무 줄어든 금 보유량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고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이외의 통화표시 자산 비중도 늘려갈 필요가 있다. 중국의 도광양회가 의미하듯 크게 눈에 띄지는 않되 스스로의 실속을 챙기면서 힘을 축적하는 정중동의 행보가 매우 절실한 시점이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