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 기아자동차의 공동 연구 제안을 거절합니다. 우리 기술력을 원하면 완제품을 구입하세요. "

2004년 세계 1위 변속기 개발업체인 일본 아이신으로부터 현대 · 기아차 연구개발 총괄본부로 날아든 전문이다. 당시 6단 자동변속기 개발이 급했던 현대 · 기아차는 독일 부품업체인 ZF에 'SOS'를 보냈다. ZF는 한술 더 떠 수천억원의 로열티를 요구했다. 현대 · 기아차는 같은 해 7월 독자 개발로 선회,3년여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전륜 6단 자동변속기를 만들었다.

현대 · 기아차가 작년 말부터 양산해 온 6단 변속기의 개발 비화를 20일 공개했다.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쏘렌토R의 연구개발(R&D) 스토리'란 소책자를 통해서다.

현대 · 기아차가 당초 아이신과 ZF를 찾은 것은 관련 특허가 워낙 많이 등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두 업체로부터 면박만 당한 연구원들은 처음엔 5단 변속기를 6단으로 바꾸는 방법을 고민했다. 종전 생산 라인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원가 및 성능 경쟁력이 떨어졌다.

완전 신형 6단 변속기 개발에 착수한 연구원들이 첫 번째로 맞닥뜨린 문제점은 극심한 유압 변화였다. 설계팀과 시험팀 담당자들은 온도 또는 기포가 원인인 것으로 추정할 뿐 확실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이때 시험팀 담당자가 인근 상점에서 어항에 넣는 기포 발생기를 구해 왔다. 변속기에 넣자 온도 변화에 관계 없이 유압이 요동 쳤다. 유압 변화의 원인이 기포라는 점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연구원들은 또 아이신 등의 특허 시비를 피하기 위해 수백 개 도면을 구석구석 비교하는 수작업을 벌여야 했다.

현대 · 기아차는 30만㎞의 내구성 시험 끝에 작년 말 6단 변속기 독자 개발에 성공했다. 완성차 업체로는 도요타와 GM에 이어 세 번째다. 300여개의 특허도 냈다. 2009년형 현대차 그랜저에 이어 기아차 쏘렌토R에 탑재했다.

박성현 현대 · 기아차 파워트레인센터장은 "천문학적인 돈도 부담스러웠지만 기술을 사와야 한다는 데 연구원들의 자존심이 상했다"며 "독자 개발로 2015년 기준 연간 5조원 이상의 수입대체 효과를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 · 기아차는 현재 8단 자동변속기도 개발 중이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