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우리는 몇 번이나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일까?

세수하면서,화장하면서,엘리베이터 안에서,쇼윈도에서,자동차 백미러에서,휴대폰 액정(液晶) 속에서,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얼굴을 들여다본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매번 비슷하지만 그래도 보고 또 본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가령 어린 시절 우리 대부분은 도화지에 자신의 얼굴을 그리거나,가운데 자신을 둔 가족의 모습을 그린 경험이 있다. 비록 동그란 선 하나에 눈,코,입을 찍어 붙였지만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커나가면서 대부분 이 작업을 그만두지만,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얼굴을 계속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2003년 동그란 얼굴에 눈,코,입을 그리고 밑에 '바보야'라고 적은 자화상을 선보였다. 그림을 직업으로 삼는 화가들은 수시로 '한국 미술작가들의 자화상전'을 열고,2007년 프랑스 문화원에서 열린 '작가들의 자화상전'에서는 소설가 박범신씨가 산을 모자처럼 쓴 모습을,소설가 서영은씨가 땅속에 묻혀 사유가 깊어가는 고구마 얼굴을 전시했고,최근 소설가 마광수씨는 다시 태어날 때 갖고 싶은 야한 여자의 얼굴을 그려 세상에 내놓았다.

자화상은 르네상스 초기인 15세기께부터 많이 그려졌는데,이는 인간의 외적 아름다움보다 자신의 내적 자각이 강해진 시기와 맞물려 있다. 나라마다 사람마다 자화상을 그리는 도구와 방법은 천차만별이어서,유화나 판화뿐만 아니라 연필,크레용,쓰다 남은 화장품,심지어 갈색 커피를 사용한 것도 있다.

이런 다양한 화법(畵法)에도 불구하고 자화상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본래 얼굴을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얼굴이나 주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얼굴이 아닌 것이다. 모습을 닮고 안 닮고를 떠나,아예 성별을 뛰어넘거나 인간의 모습을 초월하기도 한다.

자화상은 외부에서 요구하는 얼굴이 아니라 내부의 목소리가 원하는 얼굴이다. 자화상을 그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새로운 것을 갈구하면서도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율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래서 외부의 경쟁이나 평가에 지친 우리가 시급히 되찾아야 할 것이 바로 잃어버린 내면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5월에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 날 등 다른 사람을 위한 날들이 지나갔으니,이제야말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 '자화상 그리는 날'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 국가의 자화상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정부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계속 그리고 있을까,아니면 거울에 비친 모습만 거듭 확인하고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있다. 그 전신은 국가이미지위원회였다. 명칭이 그러하듯 기업이나 상품으로서의 국가 브랜드를 높이기 위한 이미지에만 신경을 쓰고,한국인이 자각하고 있어야 할 한국적인 얼굴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외국에서 '삼성' 혹은 '현대' 하면 금방 인지되는데 '코리아' 하면 그 이미지가 모호하게 전달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얼굴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는 외부에 비치는 얼굴 이전에 우리 스스로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 얼굴이다. 그 상태가 금방 떠오르지 않거나 희미하다면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셈이다.

외국에 브랜드 이미지만 강조할 것이 아니다.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얼굴을 먼저 그려보는 일이다. 결국 한국인의 자부심과 긍지 자체가 국가브랜드 이미지가 되면 더할 나위가 없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