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金塋允)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남북총리회담의 합의문은 한 편의 파노라마다.

이것을 보면 지금은 사문화(死文化)되다시피 한 1991년 말의 남북기본합의서를 떠올리게 된다.

오늘의 남북관계가 어쩌면 지금으로부터 만 16년의 원점에 다시 서있는 것은 아닐까. 남북기본합의서는 동서독의 '기본조약'이나 마찬가지였다.

1972년에 체결됐으며,체결된 지 17년 만인 1989년 11월 동서독을 갈랐던 장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0년 10월 독일은 정치ㆍ제도적인 통일을 했다.

우리도 통일을 생각하며 기본합의서를 채택한 지 16년,남북경협은 벌써 20년이 되어간다.

동서독의 통일은 동독주민이 서독체제로의 통일을 원했기 때문에 가능했고,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동독의 주민들이 서독과의 교류협력을 통해 부유하고 건강한 서독의 사회를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류협력을 통해 서독의 사회를 동경하고 원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 모두 서독체제로의 통일을 원했던 것이다.

물론 독일 통일이 우리의 모델은 아니다.

더구나 한 체제의 붕괴를 통한 흡수통일식 통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엔 교류협력의 목표가 남북이 모두 다정한 이웃으로 잘사는 데 맞춰져 있다고 하자.그렇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그런 목표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와 있는지 자문(自問)하게 된다.

아직도 북한이 먹는 문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총리회담으로 남북관계는 이제 16년 전으로 돌아와 공동번영의 또 다른 출발선에 섰다.

그 때와는 크게 달라 보인다.

남북관계가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강력한 바탕을 마련하고 있으며,북한의 의지도 강하다.

미국의 대북정책도 크게 바뀌었다.

이제는 북이 제대로 화답을 할 차례다.

무엇보다도 총리회담의 합의 사항이 이행될 수 있는 추동력을 그들이 마련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군사 분야의 보장이다.

2007 정상선언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그 의미를 다하기 위해서는 군사 분야 동의와 협력이 필히 수반돼야 한다.

도로 철도와 같은 물류분야는 북한 군부의 영향력을 직접 받는 분야다.

군사분야의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다.

통행ㆍ통신ㆍ통관 등 3통(通) 문제는 개성공단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적용돼야 한다.

남포나 안변의 조선협력단지가 제대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언제,어떤 방법으로든지 인력과 물자가 북으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다.

조선은 국제시장에서 우리의 경쟁력과 자존심이 걸린 분야다.

남북간 산업협력이 이뤄지는 곳은 반드시 그 규모에 상관없이 경제특구로 출입,체류,통신,통관이 자유로워야 한다.

경협의 주체인 기업을 신나게 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민족'보다 '경제성'이 더 우선이다.

총리회담을 계기로 남북 교류협력이 봇물처럼 쏟아질 것이다.

해주,개성공단,남포와 안변,백두산,평양,신의주 등 거점지역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진다.

항만,공단,철도와 도로,자원개발,관광,농업,보건의료,기상과 스포츠,역사,언어,문화예술,과학기술,이산가족 등 전 분야에 걸쳐 남북의 만남이 대거 이뤄진다.

총리회담에서의 합의는 이 모두를 수용하겠다는 북한의 의지다.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남한 정부의 할 일은 더욱 많아졌다.

무엇보다 남북관계가 정권에 관계없이 순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핵 문제를 말끔히 풀 수 있는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고,미ㆍ북 관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채근해야 할 것이다.

기업의 원만한 대북 진출을 위한 기반시설 확충과 이를 위해 재원조달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전체를 조망하면서 조정과 관리를 해 나갈 수 있는 지원 및 자문기구의 구성도 요구된다.

힘찬 남북관계의 시동이 거친 물살을 가르며 순항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넘어야 할 난제들이 많다.

총리회담의 합의가 더 이상 제2의 '남북기본합의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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