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 동아정기 모디아 중앙제지 등 4개 상장·등록기업 대주주들이 유상증자 대금을 납입한 것처럼 꾸미고 유령주식을 발행·유통시킨 것은 증시의 근간을 뒤흔드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피해를 입은 소액투자자들이 1만5천여명에 달하고 피해규모도 최대 1천억원을 넘는다는데 보상 받을 길은 막막하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들 4개 회사는 지난해 총 1천2백90억원 규모의 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면서 은행명의의 '주금납입보관증명서'를 위조해 주금이 납입된 것처럼 꾸미고 주식을 발행하는 신종 사기극을 벌였다. 증자대금을 납입했다가 곧바로 인출하는 소위 '가장 납입'은 그동안에도 종종 있어왔지만 이번 사건은 이를 훨씬 능가하는 충격적 범죄행위다. 4개사가 위조 주금납입보관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이를 근거로 신주를 발행했지만 감독당국은 간단한 확인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니 말문이 막힌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선의의 피해를 입은 소액투자자들이다. 대호의 경우 현 자본금은 6백71억4천만원이지만 정상적으로 납입된 것은 21억4천만원에 불과해 96.9%가 가짜 주식이라고 한다. 동아정기 주식도 절반이 가짜고 중앙제지 역시 6일로 예정됐던 신주상장이 이뤄졌다면 93.7%가 유령주식으로 채워질 판이었다. 소액투자자들은 자금조달이 원활히 이뤄지는 것을 보고 유망기업이라고 판단해 주식을 사들였는데 결과적으로 파렴치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들의 뱃속만 불려준 꼴이 됐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더욱 문제는 보상받을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당국은 "자구노력을 통해 회사를 정상화한 뒤 피해를 배상하는 방법과 대주주 등을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피해액을 되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이들 회사가 사실상 빈껍데기에 불과한데다 관련자들은 대부분 수사를 피해 잠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와 관계당국을 한꺼번에 기만하면서 증시의 신뢰를 바닥으로 추락시킨 이번 사건 주모자 및 관련자들이 엄중 처벌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금융당국도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자료제출요구권(증권거래법 제19조)을 발동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주금납입증명서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데도 이를 등한히 한 이상 감독당국으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다시는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구체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함은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