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우왕좌왕'(右往左往)이 뽑혔다는 소식이다. 교수신문이 주요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 전국 교수 76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이다. 비단 교수들 뿐만 아닐 것이다. 참여정부 1년은 갈팡질팡 정책 혼선과 사회적 혼란으로 점철된 고통스런 한해였다. 참여정부 출범은 보수기득권층을 대변했던 한나라당 중심의 구 지배세력이 탈권위적,비정파적 성향을 가지고 성장해 왔던 네티즌 중심의 새로운, 젊은 대중에 의해 복귀를 저지당한 역사적 이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칠전 노사모의 당선 1주년 자축모임인 '리멤버 1219' 집회에서 "특권과 기득권과 반칙으로 이 세상을 주무르던 사람들의 돈과 조직, 그리고 막강한 언론의 힘을 물리치고 우리는 승리했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비록 간발의 차였지만,그 승리는 선거혁명이라 해도 될 만큼 정치지형이 바뀌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역사적 승리를 이끌어낸 세력은 정치이념상 통일성이 약하고 국정수행 경험이 부족한 정치적 소수자들에 지나지 않았다.승리의 환희를 즐길 겨를도 없이 이들은 험상궂고 모순된 현실정치의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주한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의 국민적 분노와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한 대미협력문제가 그랬고, 침체경제의 회복을 위한 경쟁력 강화 및 성장 정책 요구와 노동계 요구 사이의 모순이 그러했다. YS, DJ의 문민 집권기간을 거치고도 종식되지 않은 채 누적된 사회갈등들이 도처에서 불거졌다.반면 이들이 정치권에서 대면해야 했던 상대는 '여의도 권력'이라 일컬어지는,'대통령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다수야당이었고 이들 신흥세력이 질시해마지 않았던 보수반개혁의 언론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이 그 흔한 밀월기간도 없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져든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귀결이었다. 노무현식 정치는 아마추어 근본주의가 상황논리에 따라 마구 변질되는 하이브리드 현실정치 그것이었고 따라서 우왕좌왕의 모습을 피할수 없었다. 보수기득권의 골리앗에 '맞장'을 뜨고자 했던 용기는 가상했지만,현실의 벽은 높았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검찰의 정치적 효용마저 포기한 터에 소수정권이 호소할 곳은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국민들뿐이었다.'리멤버 1219'에 '노짱'이 나와 1년 전을 회상하며 '시민혁명의 계속'을 외친 것도 그런 정치적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1219를 리멤버'해도 노 대통령,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낙담상혼을 우호적으로 되돌리긴 어려울 것 같다. 노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재야운동권조차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이 참담한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혹자는 비전이 없다고도 하고 그룹의 무능을 질타하기도 한다.대통령의 말실수와 그에따른 국정 리더십의 누수현상, 코드인사의 폐단, 노사대립, 지역갈등 등 사회적 혼란에 따른 국가경쟁력 약화를 거론하는 목소리도 작지않다. 동시대인 모두가 함께 보고 겪은 바여서 새삼 되풀이할 필요조차 없는 인과응보론이겠지만,무엇보다도 근본적 원인은 참여정부의 리더십 자체에 있다고 보는게 옳다. 참여정부의 첫해가 우왕좌왕이란 말로 표현됐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중추적 인사들의 리더십과 문제해결 능력에 결함과 미숙함이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결코 꺼져가는 '시민혁명'의 불씨를 되살려서 풀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시민혁명이란 어려울때 다시 꺼내 쓸수 있는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현실정치는 냉엄하다.응원단의 화려한 춤만으로는 가라앉은 관중들의 환호를 되살릴 수 없다. 멋진 플레이를 보여 시합을 승리로 이끌 유능한 선수들이 필요하다.더욱이 이미 곳곳에서 위기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현 상황에선 심기일전 팀워크의 재정비를 위해 좀더 과감한 선수교체가 불가피하다. 개·보수차원의 인사, 선거징발에 따른 땜질식 개각과 리멤버 1219로 상심한 관중들의 심사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