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비극의 기원'을 쓴 발터 벤야민(1892∼1940)은 사진이 귀족의 전유물이던 예술작품,즉 일품 일회성의 오리지널에 대한 신화를 깨뜨림으로써 시민의식을 일깨웠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화가 L 모호이너지(1895∼1946)는 사진에 의해 '사물의 순수객관적 파악'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카메라는 실제 인간의 눈이 못 미치는 사물의 깊고 먼 곳까지 반영한다. 사진은 과거 사실의 표상이자 지나간 시간을 재생시킨다. 사진에 의한 재현은 때로 기억의 모호함이 겹쳐 생긴 사물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그런가 하면 렌즈의 각도는 간혹 대상과 의미를 바꾼다. 컴퓨터와 인터넷 대중화에 힘입어 디지털카메라 붐이 일더니 카메라폰이 젊은층을 휩쓸고 있다는 소식이다. '폰카'로 불리는 카메라폰은 휴대전화기에 디지털카메라를 단 제품이다. 어디든지 갖고 다니며 무엇이든 찍을 수 있어 나오자마자 대유행이라는 것이다. 다른 휴대전화기는 안팔려도 폰카는 없어서 못판다고 할 정도다. 폰카의 용도는 다양하다. 자동차 접촉사고시 현장사진을 찍는 건 물론 마음에 드는 장면을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 쓰거나 친구나 애인에게 보낼 수도 있다. 온갖 일상사를 담아 개인사를 만들거나 컴퓨터에 연결해 스타나 강아지 사진과 합성하기도 한다. 특정한 걸 찍는 게 아니라 일단 찍은 다음 이미지에 따라 지우거나 저장하는 것이다. 폰카가 늘어나자 인터넷 포털사이트엔 찍은 사진을 공개하는 '카메라폰 갤러리'가 생겼는가 하면 어두운 곳에서 안찍히는 단점을 보완한 플래시 장착 제품과 동영상 촬영용도 나오는 마당이다. 사진기가 아니라 놀이기구인 셈이다. 그러나 편리한 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남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기업이나 기관의 기밀을 빼내는 몰래카메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올봄 어느 고등학교에선 학생이 카메라폰으로 교생의 치마 속을 찍어 친구들끼리 돌려봐 문제가 됐다고 한다. 결국 폰카를 개발한 연구소와 국가정보원 등에서 카메라폰 반입금지령을 내렸거나 검토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세상 모든 문명의 이기는 위험한 것인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