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이 배급제의 범위를 줄이고 시장 영역을 확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양곡을 포함한 주요 생활필수품들을 배급해 주기보다는 임금을 올려주어 주민 스스로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물자부족과 생산성의 낙후로 공급체제의 애로가 만성화돼 있는 북한으로서는 물자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겠다. 물자의 배분을 배급제에 의존할 경우 관료들의 부패는 물론이고 수요를 무시한 획일적인 배분이 물자의 비효율적인 사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아무리 공동체적 생활과 인간주의적 가치를 강조한다고 해도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기주의적 행동동기는 무시할 수 없음을 이제 북한도 인정한 셈이다. 인간의 이기주의적 행동은 사회적으로 주어진 제도에 의해 달리 나타난다. 배급제에 의해 물자가 공급된다면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하든 그렇지 않든 주어지는 물건을 되도록 많이 받아두려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임금이 지급되고 시장에서 화폐를 활용해 필요한 물건을 선택적으로 구입하게 한다면 사람들은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만을 구입할 것이고,이는 결국 사회전체적으로 부족한 물자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할 것이다. 바로 주어진 제도가 사람들의 행동을 유인하는 동기,즉 인센티브(incentive)의 역할을 하게 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못의 생산 목표량을 무게로 책정했더니 단위 공장에서는 무게가 많이 나가는 큰 못만을 생산했고,다시 못의 생산량 목표를 못의 개수로 책정했더니 작은 못만을 생산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오기도 한다. 인간의 이기주의적 행태에 유효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경제적 효율을 극대화해 보자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적 의도이다. 사실 그러한 자본주의 제도의 의도는 역사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이루었다. 자본주의의 멸망을 예언했던 칼 마르크스조차도 자본주의는 역사 이래 가장 큰 생산증대를 실현했다고 '공산당 선언'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공된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인센티브가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들어 버리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기업들이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회계분식을 통해 매출과 이익을 부풀려 왔으며,이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들 회사는 도산하고 미국경제는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대기업들은 경영과 소유가 분리되고 경영자들은 소유자들로부터 경영성과에 대해 비례적인 대가를 지불받게 돼 있다. 경영 성과에 비례해 많은 대가를 주도록 하는 것은 경영자들로 하여금 보다 경영을 잘하게 해서 소유자들에게 보다 많은 이윤을 배당하게 하기 위한 인센티브 제도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러한 제도가 경영자들의 행동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 유인한 것이 최근의 회계분식 사건들이다. 경영자들이 진짜 경영을 잘 하려 하기보다는,회계상으로 업적을 부풀려 보다 많은 대가를 얻고자 한 것이다. 인센티브 제도의 오작동으로 사회주의가 붕괴된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서도 인센티브가 오작동해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사례를 극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가 결코 자본주의적 인센티브 시스템만으로 건전하게 성장해 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미국 자본주의는 청교도적 윤리사상에 의해 지탱돼 왔다. 오늘날 미국의 기독교가 과거와 같은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의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의 자본주의적 인센티브 제도는 과연 건전한 윤리적 기초로 뒷받침되고 있는지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보자.수년 전 우리가 겪었던 경제위기도 대우 기아 한보 등의 회계부정으로 시작됐음을 잊을 수 없다. 최근 연일 보도되는 부정부패 사건들 또한 우리 경제가 결코 건전한 윤리적 기초 위에 자리하고 있지 못함을 말해준다. 우리의 자본주의가 사는 길은 자본주의적 인센티브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내세우는 인간주의적 가치 속에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길이 있다는 점은 분명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yslee@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