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험공사가 안진 등 회계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한다. 고합 등 부실기업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감사인들에게도 상응하는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공적자금 회수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예보가 감사인을 상대로 부실감사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은행대출이며 주식투자,상거래 활동 등이 모두 감사보고서를 기초로 하고 있다고 본다면 분식회계를 방조한 회계사가 그에 합당한 행정적 처벌과 민사적 책임을 져야한다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최근에는 감사인의 보수에는 손해배상 등 위험보상적 성격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민사소송 등을 통해 감사인의 책임을 엄격히 묻는 관행이 빠른 속도로 정착되어 가고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국내에서도 회계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2000년도 감사보고서에 대한 최근 사례까지 합치면 14건에 달할 정도로 이미 일반화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발생으로부터 소송문제가 검토되는 지금까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고 회계사의 책임 수준이 그 사회의 회계관행이나 회계문화 등과도 함수관계를 갖는다고 본다면 이번 소송에는 다소 우려되는 면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고합에 대한 감사부실과 관련해서는 당시 감사인이었던 세동회계법인이 감사제한 등 행정처벌을 받았던 것이 벌써 3년전인 지난 99년의 일이다. 이후 세동회계법인은 안진회계법인에 흡수합병됐고 지금은 안진 이름으로 허다한 감사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또 대우그룹의 해체 이후에는 감사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많은 혁신들이 이뤄졌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작년에는 그동안의 회계감사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면책 혜택을 주고 회계업계가 새출발하도록 기회를 주자는,소위 고해성사론이 당국 내부에서 제기되기도 했던 것이다. 회계업계의 부담능력도 현실적인 문제의 하나다. 1천억원대 이상의 손해배상 책임을 질 만한 회계법인이 거의 없다는 것은 당국 스스로의 설명이기도 하다. 소송결과에 따라 회계업계 전체가 사실상의 마비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고 보면 이 역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물론 예보가 정부기관이라고 해서 회계정책상 판단까지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회계업계와 기업경영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관련 당국과 긴밀한 협의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은 감안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