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4천9백53억원,매출 3천7백억원,부채 8백68억원(부채비율 17.5%),차입금 0.지난 17일 타계한 가헌(稼軒) 우상기(禹相琦) 회장이 이끌어 온 신도리코는 바로 이런 회사다. 1919년 개성에서 태어나 39년 개성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60년 신도리코의 전신인 신도교역을 설립,복사기등 사무기기 생산에 뛰어들었던 그의 기업이념은 삼애(三愛)정신이었다."나라와 직장과 사람을 사랑한다"는 삼애정신은 기업의 경쟁력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강조한 우 회장의 확고한 경영철학이었다.기업이 남긴 이익을 회사와 주주와 종업원에게 각각 30%씩 배분하고 나머지 10%를 공익사업에 쓰는 '3·3·3·1' 원칙을 철저히 실천에 옮김으로써 모범을 보였다. 창업 이후 단 한차례의 노사분규가 없었던 것이나 97년 환란 때 인원감축을 하지 않았던 사례도 이같은 삼애정신의 결실이었다. 개성상인의 후예답게 '한 우물 파기'의 집념과 개척정신을 보인 것은 많은 기업들이 차입에 의존한 문어발식 경영을 꾀한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40여년간 복사기 팩시밀리 프린터 등 사무자동화기기의 개발과 생산에만 전념했고, 기술을 들여온 일본으로 역수출한 것은 물론 국내시장에서 외국의 유수한 기업과 겨뤄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의 위상을 굳건히 지킨 것은 끈질긴 집념과 도전정신의 산물이다. 한 우물을 파면서도 한번도 적자를 내 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무차입경영 기업이 늘고 있지만,오래전부터 부채비율 20%안팎을 유지하다가 99년부터 완전 무차입경영을 실현한 신도리코야말로 그 원조(元祖)격인 회사라고도 할 수 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개성상인(松商)다운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기술개발에 대한 강한 열정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80년부터 전체 직원의 20%를 기술연구소에 배치해 신제품 개발에 심혈을 쏟아온 것은 기업생존의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선각자적인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선 세계의 기술을 먼저 익혀야 한다"고 강조해왔던 우 회장은 스스로 특허기술을 개발하기도 했고, 가헌과학기술재단을 설립해 기술인력 양성에 진력함으로써 '기술력만이 기업의 살 길'이란 생생한 교훈을 몸소 실천을 통해 남겼다. 고인이 남긴 개척정신, 성실과 신용을 중시하는 기업가정신, 선택과 집중이 분명한 경영철학은 새로운 투자처와 활로모색에 고민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기업들에 훌륭한 표상으로 길이 남으리라 믿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