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양복이 지금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미국의 한 재단사가 연미복(Tailcoat)의 꼬리를 자른 것이 유럽으로 전해져 신사복의 정형이 됐고 1차 세계대전 뒤 남성 외출복으로 정착됐다. 우리나라에선 1899년 외교사절의 옷으로 도입됐고 이듬해 4월 관복으로 지정되면서 일반에게 퍼져나갔다. 오랫동안 싱글수트로 대표되던 국내의 남성정장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더니 올여름엔 반바지정장이 등장했다. 남자양복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90년대초부터. 일명 콤비로 불리는 세퍼리트수트가 늘어난데 이어 노타이 스타일의 아르마니재킷이 유행했다. 남성도 딱딱하고 정형화된 모습보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선호하는 이런 분위기는 90년대말 벤처 열풍과 맞물려 남성패션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더욱이 마이크로 소프트사 빌 게이츠 회장의 분방한 옷차림으로 인해 캐주얼이 창의성과 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지면서 남성복은 점잖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진 건 물론 공작패션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모양과 색상 모두 화려해졌다. 정장보다 캐주얼을 좋아하는 현상 때문에 신사복 매출은 줄거나 제자리 걸음인 반면 캐주얼 브랜드의 매출은 계속 증가한다고 한다. 이런 우리와 달리 미국에선 최근 깔끔한 정장 차림이 되살아난다는 소식이다. 닷컴기업의 쇠퇴에 부시 대통령의 정장 선호 경향이 더해져 청바지와 티셔츠로 대변되던 빌 게이츠 패션이 사라지고 양복에 넥타이를 맨 사람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캐주얼이 근무 집중도를 떨어뜨린다며 평상시 캐주얼을 금지하는 기업이 늘고 그 결과 워싱턴과 뉴욕의 와이셔츠 양복바지 매출이 지난해 4.2%,11.6%씩 증대됐다는 보도다. 시대가 변하면 옷차림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여성 정장의 경우 치마보다 바지 비율이 높고 색깔있는 와이셔츠를 낯설게 여기던 풍조도 사라졌다. 간편하고 시원한 반바지 남성정장 또한 시대변화의 단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옷차림은 마음가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캐주얼화가 대세라고 해도 시간 장소 경우(TPO)에 맞는 차림이 최고라는 원칙은 변함없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