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이 계속 초강대국으로 위세를 유지하고 냉전체제가 지속됐다면 세계경제는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에다 IMF사태로 연유된 구조조정 ''마무리'' 시점(2월말)이 겹쳐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역사에 가정은 필요치 않다는데, 정말 부질없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서머스 전 미국재무장관은 역사가가 2세기쯤 후에 20세기 마지막을 기술한다면 소련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은 2류급 이야기로 다룰 것이고 가장 중요한 변화로 서술할 것은 세계화된 경제(global economy) 창출일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금융이라는 수단을 통해 ''세계화''를 구획한 사람의 자신감 넘치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전자와 후자를 별개의 사안처럼 따로 인식하거나 기술하는 것이 옳은 지는 생각해 볼 점이 있다.

강력한 소련이 여전히 존재하고 냉전체제가 계속됐다면 아마도 미국의 바그다드 폭격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또 어쩌면 태국에서 시작된 97년의 동남아 통화위기가 그렇게 광범하게 번질때까지 미국이나 IMF가 수수방관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의 지원요청을 쉽게 거절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지만은 않다.

IMF 사태를 미국의 세계전략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이른바 음모론적 시각이 바로 그런 것이다.

IMF 직후에 한동안 번졌던 이런 시각은 최근들어 다시 고개를 드는 감이 있다.

일본도 저 모양인데 과연 한국경제가 다시 옛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주위를 되돌아보면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측면도 결코 없지만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주요 상장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은 주택은행 66.5%, 삼성전자 56.6%, 포항제철 53.7%, SK텔레콤 48.2%, 현대자동차 42.5%, 제일은행 51%, 국민은행 62.4%, 한미은행 61.6%다.

파이낸스센터, 힐튼호텔, 현대중공업빌딩 등 요소요소의 부동산도 외국인들에게 넘어갔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대우자동차도 GM이 인수하지 않으면 처리가 어려운 형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현상을 걱정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뭔가 경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다.

외자유입에 대한 거부반응을 부채질하는 요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뉴욕증시와 나스닥 시황에 따라 춤추는 국내증시만 해도 기분이 좋지않은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며칠 뒤면 경제부처장관들이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이 정부들어서의 경제정책 성과와 과제를 밝힐 것이라고 한다.

결국 IMF이후 3년간 계속된 구조조정정책이 주된 얘깃거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할지 궁금하다.

잘했다고 얘기할지, 잘못한게 적지 않았다고 얘기할지….

IMF 이후 정부가 해온 갖가지 구조조정작업을 되돌아보면 잘못한 것이 결코 적지만도 않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정책 선택과 그 강도조절에서 너무도 많은 제약이 있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대내적인 여건은 차치하더라도 그렇다.

바로 그런 측면에서 이 시점에서 긴요한 것은 그동안의 경제정책을 되돌아보는 식의 평가가 아니다.

세계경제 현실에 대한 국가적인 인식이 모아질 수 있도록 하고 그래서 장래에 대한 비전을 갖도록 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좋건 싫건 세계화, 곧 모든 것을 개방하는 정책은 선택이전의 문제다.

다시 냉전체제가 부활할 까닭도 없고 보면 그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본형이다.

국민들에게 상품권을 나눠 주는 식의 인기영합적 정책, 리더십 부재의 정치라면 결과는 뻔하다.

올들어서의 증시활황을 과대평가, 이제 경제위기는 옛 일이 됐다며 때이른 성취감에 사로잡힌다면 이 또한 문제다.

큰 틀은 잡았는지 모르지만 구조조정이 아직도 먼 길이라는건 두말할 나위도 없고 보면 더욱 그렇다.

아마도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국제경제구조를 감안할때 앞으로도 수년이상 계속될지도 모른다.

2001년 2월말은 국민들에게 기대감을 부풀게할 시점이 아니다.

/본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