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컵에 물이 반쯤 남아있었다.

낙관론자가 말했다.

"물이 반이나 남았구나" 비관론자도 한마디 했다.

"물이 반밖에 없구나" 그러자 구조조정론자가 말했다.

"컵의 크기를 반으로 줄여야겠구나"

현재 우리 경제 최대의 화두는''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이 무엇인가.

결국 물에 비해 크기가 너무 큰 컵의 크기를 줄이는 일이 아닌가.

이는 자르고 없애고 분리하고 팔고 줄이는 일을 포함하는 힘든 작업으로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3D업종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 구조조정은 각각의 경제주체가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신속히 처리를 해야 할 작업이다.

무슨 이벤트로 만들거나,모았다가 한꺼번에 처리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구조조정이 무슨 이벤트처럼 여겨지면서 ''제2단계 구조조정''이라는 거대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밀린 일기 한꺼번에 쓰듯이 처리되고 있다.

얼마전 2단계 기업 구조조정의 하나로 퇴출기업 명단이 발표된 후에도 ''앞으로 퇴출될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루머만 더 무성해질 뿐이다.

그뿐인가.

정현준게이트다,MCI 코리아 사건이다 해서 동방금고 열린금고가 영업정지를 당한 시점에서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친절하게도 "앞으로 금고 한두 개가 더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자본이 아무리 충실하고,부실여신이 아무리 없어도 모든 예금자가 한꺼번에 예금을 빼가는 ''뱅크런 현상''이 빚어지면 어떤 금융기관도 당해낼 수 없다.

하물며 고위당국자가 이름은 얘기 안하고 앞으로 한두 개라고 할 경우 "혹시 내가 거래하는 금고가…"라는 우려가 모든 금고예금자에 대해 일시에 일어나게 된다.

결국 ''한두 개''가 아닌 모든 금고가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일단 의심의 대상이 되면 예금자들의 반응은 ''예금인출'' 한가지밖에는 없다.

해동금고에 이어 동아금고가 영업정지를 당한 것은 과연 그 발언과 상관관계가 없을까.

또 27일부터 자산규모 업계 3위인 오렌지금고가 영업이 정지됐다.

이제 금고사태는 종결될까.

2단계 금융 구조조정은 어떤가.

부실금융기관으로 평가된 은행 및 기타금융기관들을 금융지주회사로 묶는 부분이 핵심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란 다른 금융기관의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자회사인 금융기관의 사업활동을 지배하는 회사를 의미한다.

특히 금융지주회사는 다른 업종에 진출한 여러개의 금융자회사를 소유함으로써 업무영역의 다각화 또는 겸업화를 추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풀려는 문제의 본질이 겸업화,다각화인가? 아니다.

본질은 바로 오버뱅킹(over-banking)문제다.

즉 은행산업에서의 공급과잉문제를 해소하는 구조조정이 우리가 풀려는 문제의 핵심이다.

지주회사는 말하자면 ''한지붕 세가족''식의 구도다.

우선 고만고만한 부실기관이 한군데로 뭉치는 것부터 불안하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머리가 넷이 되면서 머리가 하나 늘어나는 것도 마음에 안든다.

과연 지주회사의 수장과 이에 속한 자회사은행의 행장들간에 제대로 위상정립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IMF위기를 거치면서 나아지기는 했지만,아직 우리의 조직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상전이 여럿인 경우다.

물론 그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고는 하나,소유와 경영이 통합된 재벌회장이 아닌 다음에야 지주회사의 수장이 무슨 힘으로 자회사 행장들을 움직여 조직의 효율성을 달성하는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있겠는가.

한지붕 세가족으로의 느슨한 통합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현상유지는 하고 싶은데 이대로는 안되니까 무늬라도 바꾸자는 고육지책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여기에다 정부가 ''우량하다''는 두 개 은행을 합병한다고 해서 지금 각각의 은행원들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어 시중 금융시스템은 대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 나라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은 오버뱅킹 해결과 직결되어야 하며 이 작업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질질 끄는 것은 경제위기를 부르는 확실한 ''초대장''이다.

chyun@wh.myongj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