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몇번쯤은 느껴 왔으리라.온통 간판뿐인 서울의 거리를,더구나 간판에 열거된 음식이름들에 대해서."주물럭""뼈다구""족발"을 못마땅해 하다가 "닭똥집"에 이르면 기가 차고 만다.

왜 꼭 음식 재료부위나,양념처리하는 방법까지 까밝혀야 하는가.

우리가 무슨 여우귀신인가.

뼈다귀국을 먹다니...

이런 음식은 함부로 아무렇게나 먹어도 괜찮다는 듯이,그래서 음식점 안은 웃통을 벗은 손님들에,심지어는 바지까지 걷어올리고는 물수건으로 전신을 닦으며 목청껏 떠드는 이들에다,아무데나 털어놓은 담배재와 꽁초,먹고난 음식도 볼썽 사나워 음식상도 짐승들이 헤집어 놓은 듯 너저분하기 일쑤다.

가뜩이나 웃옷을 벗어야 음식맛이 나는 듯 옷 벗고 먹는 우리의 습관이나 정장을 입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서양음식점 문화하고는 너무 대적이다.

아무리 대중 식당이고 값싼 음식이라해도(값이 싸지도 않지만) 좀 정갈하고 마뜩해서 나쁠 것 없고,그래서 저절로 목소리 낮추어가며 품위있게 먹고,먹고난 밥상도 갓 차렸던 처음과 비슷하게 가즈런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교육수준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품위수준은 갈수록 저하되고 있는가.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부끄럽다.

일본에 처음 갔을 때였다.

우동집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본말을 모르니 한자 이름으로 어림짐작할 수밖에.옥자우동,월견우동,친자우동 등등 참으로 고운 이름의 우동들이 있었다.

달걀노른자 하나 음식위에 얹어놓고 달구경하는 기분을 내게하는 월견우동,어머니의 정성이 담긴듯한 친자우동 옥자우동은 저절로 군침 돌게하는 이름이었다.

물론 음식맛은 이름보다 못했지만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동안의 기분은 무척 로맨틱했다.

고향집 안방 아랫목에 앉아 부엌의 도마질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그때는 여행에 지친 나머지 음식 이름만으로서도 아무튼 호젓하고 감미로웠으니,별 것 아닌 것으로 기분좋고 행복감을 느꼈다면 경제적 효과가 컸다 아니하랴.모르긴 해도 경제란 적게 투자하여 크고 오래가는 효용가치를 노리지 않을까.

그렇다면 별것 아닌 음식이름으로 멋스럽고 따뜻한 정감을 느끼게 하는,군침이 절로 돌게하는 효과를 낸다면 이 또한 경제적이 아니랴.장장의 논문이나 산문보다 몇마디 몇줄의 운문시로 할 말을 다한다면,장시간의 웅변이나 설교보다 두어편의 운문시로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얼마나 경제적이랴.시의 경제학적 가치연구가 어느 시대보다 절실하다.

모르긴 해도 선불교의 선문답은 불과 몇마디의 반문법적 대화가 아닌가.

그럼에도 "득도"라는 깨달음으로 단번에 훌쩍 튀어 솟구쳐 오를 수 있다니,이 얼마나 경제적 화법이랴.속인 모두가 선승이 될 수 없더라도 시인이나 시 독자는 능히 될 수 있다.

안동에서 청송으로 가는 도중에,작가 김주영씨의 고향인 진보라는 곳이 있다.

진보 근처에는 "달기약수"터가 있다.

약수터 바위가 뻘건 녹물빛이어서 철분함유량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약수는 오랫동안 생수로도 마셔왔지만,약수를 붓고 닭을 고아 치병이나 보신용으로 먹어왔다.

흔히 "달기"약수로 알려 졌다.

하지만 원래 이름은 달구 밑구멍 즉 "닭의 밑"이라는 뜻이다.

약수터의 바위돌 빛깔이 "닭의 밑"같이 붉은 때문이었다.

닭을 고아 먹어야 약발이 서기 때문에 달기 약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양반곳을 자처해온 그 고장 사람들은 상스러운 이름을 살짝 고쳐 닭의 꼬리부분 즉 "닭의 미"라는 뜻의 달구미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달구미는 "달기"로 줄여 불려졌으니,"닭의 밑""달구미""달기"약수터라는 과정을 거쳐온 셈이다.

닭을 고아 먹어야 발효된다는 상술이 겹쳐져 달기약수터는 온통 닭 고아 파는 상점들로 엉망이 돼버렸지만...

달기약수처럼 음식이름도 고쳐 나갔으면 한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다고,그깟 것들 갖고 까탈 피우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모국어의 자존심이며 국민들의 품위와 상관있다.

삼복지간 찌는 날씨탓에 생기는 괜한 짜증일까.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eaj@snuplaz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