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주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조선의 새 수도 한양의 가로변에 모두 나무를 심은 것은 태종초인 1405년의 일이다.

그 뒤 세종은 1441년 새로 만든 자를 써서 도로의 거리를 측정하고 30리마다 표를 세우거나 가로수 사이에 "후수로 불리던 나무를 심어 행인들이 거리를 식별하도록 했다.

이 시기에 심은 가로수가 어떤 수종이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단지 "단종실록"에 의정부에서 올린 짤막한 "가로수식재건의안"이 실려 있을 뿐이다.

"지난번 서울근교의 도로가에 잡목을 많이 심었는데 근래에는 나무를 심지 않고 심은 것도 잘라내서 남은 것이 없으니 옛 제도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청컨대 금년 봄부터 길 좌우에 토양에 따라 소나무 잣나무 배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등의 나무를 많이 심고 그것을 벌목하는 것을 막으소서"

1453년 의정부의 이런 건의는 왕의 재가를 얻었다.

전까지는 잡목이었던 가로수를 잣나무 매나무 등 유실수와 소나무 느티나무 등 목재용을 바꿔심자는 새로운 주장이 흥미롭지만 과연 그런 가로수 식재계획이 얼마나 실천됐는지는 가늠할 길이 없다.

일제때는 서울의 가로수로는 가죽나무를 많이 심었다.

그뒤에는 플라터너스 버드나무 포플러 은행나무 등이 심어졌다.

지금 도시의 가로수종은 천편일률적이어서 서울 부산 등 6대도시의 가로수중 74%가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라고 한다.

고작 수원의 소나무길 청주의 플라타너스길, 영동의 감나무길이 특색있는 "가로수 길"로 꼽힌다.

영동은 가을이면 빨갛게 물들어가는 감속에 묻힌 ''가을도시''가 된다.

서울시가 종로구일대 4곳 가로변 녹지대에 오는 17일부터 사과 감 모과 앵두 등 5천여 그루의 유실수를 심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앞으로 매년 유실수를 심어 도심속 "유실수거리"를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다.

한때 서울 가로수의 40%나 되는 은행나무가 환경가로수로는 적합치 않다해서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비용과 7~10년이 걸리는 교체보다는 녹지대에 유실수를 심어 공해도 막고 삭막한 회색도시에 사는 시민들의 메마른 정서에도 도움을 주려는 서울시의 계획이 훨씬 더 실용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