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지난 1백년간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연출했다.

20세기의 여명은 도전으로 시작됐다.

한국경제는 초기 반세기동안 일제의 수탈경제와 한국전쟁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거듭했다.

응전은 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본격화됐다.

한국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에 힘입어 농경국가에서 일약 신흥공업국
선두주자 대열에 올랐다.

건국 당시 67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 96년 1만달러를
넘어섰다.

선진국의 사교클럽이라고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강의 신화"는 모래성처럼 몰락했다.

97년 선진경제 진입의 문턱에서 IMF 사태라는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이어 금융빅뱅과 기업퇴출 등 시련의 과정을 거치며 새천년을 위한 응전을
준비중이다.

지난 1백년간 한국경제의 변천사를 짚어본다.


<> 외세에 밀린 시련의 시대(1900~47년)

한국경제는 근대화의 토양에 자생의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개방과 함께
밀어닥친 외래문물에 유린당했다.

특히 한일합병 이후 일제의 수탈자본주의는 경제를 괴멸사태에 몰아 넣었다.

그러나 동토속에도 근대 자본주의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1904년 경부철도가 개통된데 이어 19년엔 최초의 주식회사인 경방이
탄생했다.


<> 전후복구 바쁜 혼돈의 시대(48~60년)

8.15 광복에 이은 국토분단과 6.25 전쟁은 한국경제의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경제는 자생적 발전능력을 상실하고 미국 원조에 의존해 전쟁의 상흔을
복구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면방직 제분 제당 등 소비재부문에 진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사업"에 참여해 다각화 전략을 추진했다.

섬유 합판 가발 등 노동집약적 수출품목을 중심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동시에 전자 자동차 합섬 등 신규분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 경제개발 박차 압축 성장기(61~79년)

5.16 쿠데타로 집권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은 61년 12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62~66년)을 발표했다.

"박정희 모델"이 가동된 것이다.

경제기획원이 설치되는 등 경제개발의 추진체계가 정비된 것도 이 시기였다.

정부가 주도하는 성장제일주의는 연평균 8%대 고도성장이란 결실을 낳았다.

또 65년 한.일 국교정상화는 외자도입을 통한 고도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반면 대일의존이 심화되는 부작용도 낳았다.

박 정권은 60년대 후반 수출지향으로 경제정책 기조를 일대 전환, 성장의
발판을 다졌다.

73년과 79년엔 제1차 및 2차 오일쇼크란 도전을 받았지만 해외진출과
중동특수 등으로 파고를 넘는데 성공했다.

73년 1월 발표된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은 조선 철강 자동차 전자 등을
한국의 주력산업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를 통해 77년엔 수출 1백억달러란 금자탑도 쌓았다.

그러나 "성공 신화"의 이면에선 정경유착과 관치경제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 호황.부작용 교차 성장 조정기(80~91년)

79년 개발연대를 지휘했던 박 대통령의 시해 이후 군사정권 계승과 이에
따른 안정화 정책으로 마이너스 성장이란 조정기를 경험했다.

고도성장 전략에 대한 반성이 나왔으며 안정화 기조로의 전환이 추진됐다.

개발연대의 종말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80년대초 안정화 시책과 기업의 체질강화 노력 등이 유가 달러 금리 등의
3저현상과 맞물리면서 86년 이후 한국경제는 "단군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

정부주도와 수출지향 및 안정성장을 3두마차로 하는 정책성과가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경상수지가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됐으며 86년부터 3년연속 12%대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편에선 거품이 확산되고 부동산투기 병폐가 만연했다.

부동산 가격 급등에 대한 처방으로 주택 2백만가구 건설이 추진됐으나
부실시공과 임금상승 등의 부작용을 초래했다.

87년 6.29선언으로 정치민주화 과정에서 노사갈등이 폭발, 사회전반에
비효율을 누적시키며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치렀다.


<> 위기 부른 버블의 시대(92~97년)

92년 출범한 문민정부는 "신경제"와 "세계화"의 기치를 내걸고 광범위한
개혁조치들을 실시했다.

초기의 높은 지지도를 배경으로 금융실명제와 신경제 5개년 계획 등을
터뜨렸다.

그러나 문민정부 중반이후 실익없는 전시성 선언과 국제기구 가입 등이
이어지면서 거품이 쌓여갔다.

특히 95년 소득 1만달러 달성과 OECD 가입으로 선진국 무드가 일면서
"과소비병"은 극에 달했다.

부실과 구조결함이 누적되며 대외신인도가 추락하는 등 암세포가 경제전반에
퍼지고 있었다.

96년말 노동법 파동과 97년말 금융개혁 진통은 개혁의 마지막 기회까지
수포로 만들었다.

한보철강 부도와 삼미특수상 법정관리 신청, 진로의 화의 신청, 기아사태 등
대기업들의 몰락은 곧이은 경제위기의 전주곡이었다.


<> IMF 체제 혹독한 시련(97년말~99년)

국제통화기금(IMF)체제가 시작되면서 경제에 총체적 위기가 닥쳤다.

신청에서 합의까지 단 12일만에 IMF(국제통화기금)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이 한국에 수혈됐다.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금융도산 기업재편 등 고통스런 구조조정
과정이 진행됐다.

97년 이후 30대그룹중 14개가 부도를 내거나 협조융자를 받았다.

"대마불사"의 신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0개 은행이 퇴출되거나 합병되고 14개 종금사가 인가취소되는 등 "금융
빅뱅"이 일어났다.

빅딜과 워크아웃 등으로 대기업 구조에도 일대 혁명이 발생했다.

그러나 "창조적 파괴"과정을 거쳐 외환위기의 늪에서 1년반만에 탈출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 유병연 기자 yooby@ 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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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 1백대 사건

[ ''00 ]

1900년- 한강철교 준공
1904년- 경부철도 완공
1905년- 화폐금융개혁
1907년- 국채보상운동
1910년- 한일합방

[ ''10 ]

1912년- 토지조사령 공포
1914년- 호남선 완전개통
1916년- 여의도 비행장 개장
1919년- 최초의 주식회사 경방설림

[ ''30'' ]

1933년- 미쓰이물산, 조선맥주회사 설립

[ ''40 ]

1945년- 8.15 광복
1948년- 농지개혁 착수
- 한.미경제원조협정

[ ''50 ]

1950년- 한국은행 창립
- 한국전쟁
1951년- 귀속재산처리법 공포
1952년- 한미합동 경제위원회 설치
1953년- 제1차 통화개혁
1955년- 증권거래소 개설
- IMF(국제통화기금), IBRD(세계은행)가입
1956년- 경제부흥 5개년계획 공표
1959년- 증권시장 개장

[ ''60 ]

1960년- 외자도입촉진법 제정
1961년- 경제기획원 설립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발표
- 울산공업지구 설정
- 6.10통화조치(제2차 통화개혁)
1964년- 수출 1억달러 목표 달성
1965년- 월남 파병
- 한.일 국교정상화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
- 외자도입법 공포
1967년- GATT가입
1968년- 자본시장 육성법 제정
1969년- 마산 수출자유지역 설치

[ ''70 ]

1970년- 경부고속도로(4백28km) 개통
- 포항종합제철 기공
- 농촌근대화 10개년 계획 발표
- 4대강 유역 종합개발계획 확정
1971년- 국토종합개발 10개년계획 확정 서울~부산간 자동전화 개통
1972년- 새마을 운동 시작
- 7.4 남북공동 성명
- 8.3 기업사채 동결
1973년- 중화학공업 육성선언
- 제1차 오일쇼크
- 주요도시 그린벨트 공포
1974년- 국민생활안정을 위한 1.14 긴급조치
- 서울지하철 1호선 개통
1975년- 중동건설 촉진 방안
1976년- 부가가치세 도입
- 국민의료시행 확대방안 확정
1977년- 수출 1백억달러 달성
- 쌀생산량 4천만섬 초과
- 원자력발전 개시
1978년- 12해리 영해 선포
- 수입자유화
- 중동건설 수출붐
1979년- 제2차 오일쇼크

[ ''80 ]

1980년- 율산그룹 도산
- 중화학공업 투자조정단행
- 컬러TV 방송 시작
1981년- 공정거래위원회 발족
1982년-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1983년- 메모리 반도체산업 진출
- 명성그룹 사건
1984년- 해운업 통폐합 조치
- 대구~광주 올림픽고속도로 준공
1985년- 부동산 투기조절을 위한 부동산종합대책 발표
- 자본시장 육성방안 발표
- 국제그룹 해체
1986년- 경상수지 첫 흑자
- 의료보험 확대 실시
1987년- 농어촌 부채경감 대책
- 국민연금제도 실시
- 대규모 노사분규
1988년- 88올림픽과 3저호황
- 7.7선언과 남북경협
- 8.10 부동산대책
1989년- 분당.일산 등 신도시 개발계획

[ ''90 ]

1990년- 토지공개념
1991년- 대소경협차관 제공
- 남북한 유엔회원국 가입
1992년- 증권시장 외국인에 개방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
1994년- WTO(세계무역기구)가입
- 종합주가지수 1,138.75 기록
199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1997년- 한보철강 부도
- 기아 사태
- IMF 체제 돌입
1998년- 은행 퇴출.합병
- 14개 종금사 인가취소
- 55개 퇴출기업 명단 발표
- 빅딜과 대기업 구조조정
- 실업대란
- 소떼방북 및 금강산 관광
1999년- 대우그룹해체
- 제일은행 매각
- 벤처.코스닥 시장 열풍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