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창록 <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 crwoo@wooyun.co.kr >


미국 유학시절때다.

지도교수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다.

딴에는 비록 학생이나 국내에서 이미 3년 이상 변호사로서 사회생활을
경험했고 지도교수도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 초대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한국에 관해 잘 모르는 교수께 한국을 소개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유익하리라는 판단에서 과감히 노교수을 초대했다.

교수도 흔쾌히 초대에 응해주었다.

아내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하니 아내도 즐거운 마음으로 귀빈을 맞이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준비를 했다.

나 자신도 아내의 준비를 도왔다.

마지막 마무리를 하면서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갔다가 너무나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교수 내외가 이미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차안에서 기다리고 계신
것이 아닌가.

아직 약속시간이 15분이상이나 남아있었다.

그곳에서는 길이 막혀서 약속시간에 늦게 오는 경우란 거의 없다.

나는 얼른 피해 내가 교수를 보았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돌아서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교수 내외는 정확하게 약속한 시간에 초인종을 누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준비한 한국적인 음식이 교수로서는 모두 생소한 것
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 편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손님이 미국의 노교수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저
한국적인 것만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동안 접해 본적도 없고 맵고 냄새나는 음식을 편히 먹기를 기대한 우리가
얼마나 생각이 짧았는가를 절감했다.

교수내외는 밖으로는 전혀 내색을 하지않고 모든 종류를 다 조금씩 먹으며
계속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노교수의 깊은 배려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교수에게 학문뿐만 아니라 매사에 남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배운
셈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