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고 꾀죄죄하고 작은 것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때가 있다.

세상이 모두들 말끔하고 휘황찬란하고 거대한 것들을 좇아 달려간다는
생각이 들 때면 더욱 간절히 그런 마음이 든다.

얼마전 등산을 다녀 온 남편의 배낭 속에서 생각지도 않은 것이 나왔다.

처음엔 남겨온 음식물이거나 아니면 누가 버린 쓰레기를 주워온 것인가
했다.

검은 비닐에 싸인채 국물을 흘리고 있었다.

짠지였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산에 같이 오른 선배가 주었다는 것이다.

그날 거의 20여명의 산악회원들이 산에 왔는데 그들 모두에게 그 짠지를
두세 개씩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웬 노인이 그 짠지를 팔고 있어서 그걸 몽땅 사서
짊어지고 온 것이다.

그 노인이 어떤 차림으로 어떤 얼굴로 쭈그리고 앉아서 그 짠지를 팔고
있었을지 안 보았어도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 선배가 그걸 다 사겠다고 할 때 그 노인의 얼굴에 떠올랐을
표정도 눈에 환하다.

하마터면 쓰레기인 줄 알고 버릴 뻔 했던 짠지를 물에 담갔다가 채를 치고
양념을 해서 무쳐 놓았더니 개운하고 칼칼한 맛이 입맛을 돋구었다.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일이지만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기쁨을 주는 사람이
있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거창하게 떠벌려서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슬기롭게 난국을 극복하자" "청소년 선도에 앞장서자"는 등의 슬로건들은
거창하다.

그러나 말뿐이어서 피곤하다.

명절 무렵이면 "고향에 안녕히 다녀오십시오"라고 대로변에 크게 써붙여
펄럭거리게 하는 국회의원들의 플래카드도 텅빈 거창함으로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정말 하찮은 것처럼 보이나 진정 아름다운 일은 거창하게 슬로건을 내걸지
않는다.

그것들은 숨어 있고 작으며 꾀죄죄하나 오랫동안 잊을 수 없게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