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훈 < 재미변호사 >

최근 유행어처럼 사용되는 "시장의 세계화" 현상은 무조건 좋은 일만은
아니다.

특히 한국처럼 IMF시대를 맞아 경제구조 개혁에 고심하고 있는 국가는
시장의 세계화가 시장개방 및 경제구조 개선에 초래하는 부작용으로 인해
적지 않은 고초를 겪고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시장의 세계화가 의미하는 중요한 변화중의 하나는 외국법의 적용이 늘어
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근대 시장경제의 기틀인 경쟁법 혹은 공정거래법의 적용은 중시해야
할 사안이다.

한국기업이 미국시장에 상품을 판매하거나 유럽회사와 조인트벤쳐를 만들때
여러 외국의 경쟁법을 준수해야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의 컴퓨터 제조업체인 AST사를 인수했을 때
유럽연합(EU) 경쟁국에 합병사전신고서를 적시에 제출하지 않은 사실과 관련
해 지난 2월 비유럽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EU 합병사전신고법 위반혐의로
합의해결을 위한 벌금을 지불하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기업이 미국회사를 인수하는데 EU에 사전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점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일어난 행위라도 자국의 경제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경우에는 자국의 경쟁법을 적용하는 것이 최근의 경쟁법 역외적용 추세다.

다른 예로 97년에 독일의 피스톤 제조업체가 브라질의 경쟁사를 인수했을
때 미국의 경쟁당국에 합병사전신고서를 적시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해서
5백만달러가 넘는 액수의 벌금을 물었던 일이 있다.

비록 합병 당사자는 독일기업과 브라질기업이었지만, 이들은 미국 내의
현지법인을 통한 상행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에는 강 건너 불구경처럼 여겨졌던 미국의 합병심사법도 이제는 우리가
현명하게 대응해야할 중요 안건으로 부각했다.

실제로 금년 여름 현대전자가 소유하고 있던 미국소재 컴퓨터 부품 제조업체
인 심바이오시스사를 경쟁사인 어댑텍사에 매각하려던 계획이 미 연방공정
거래위원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기도 했다.

외국의 적극적인 경쟁법 집행을 강대국의 횡포라고 한탄만 할 시대는
지났다.

우리도 외국의 주요 경쟁법을 깊이 연구해서 능동적으로 외국법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외국기업의 행위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이 시점에서
세계화에 상응하는 경쟁법을 정립해 외국기업의 행위에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따라서 순수한 외국기업간의 합병도 한국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경우에는 한국의 경쟁법 집행당국에 사전신고를 의무화하며, 때에 따라서는
심도 깊은 합병심사를 실시하는 방법도 있다.

특히 공산주의 몰락후 후진국으로만 여겨졌던 구 동구권 국가의 대다수가
이미 미국과 유럽공동체의 경쟁법을 본따서 엄격한 합병사전신고법 체제를
갖추었으며, 실제로 미국 굴지의 법률사무소들은 고객기업의 합병을 계획할
때 구 동구권의 합병사전신고법 준수에도 상당한 신경을 쓰는 점은 경종을
울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더욱 경제성장을 할수록, 세계 곳곳에 진출을 할수록, 외국의
현지법을 적용당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물론 종전에도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외국 시장에 대한
수출증대에 총력을 다해 왔다.

이에 따른 각국의 통상분야의 법률문제를 접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직면하고 타파해 나가야할 법률 문제의 성격과 범위가
통상분야를 넘어서 주요 외국시장의 경쟁법은 물론 노동법 환경법 증권법
선거법 등 다양한 분야에 이르렀다는 것이 전과의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의 세계화는 우리에게 새 판로를 개척하며 새 시대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의 표현처럼 냉혹한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체제
에서 "무료 점심"은 없다.

세계화된 시장의 구조와 법률을 백분 활용해서 남보다 유리한 지위를 확보
하지 않는 한 세계화는 단지 보다 많은 경쟁자와의 치열한 경쟁만을 의미할
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