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곤 HLB그룹 회장. /사진=한경DB
진양곤 HLB그룹 회장. /사진=한경DB
요즘 가장 핫한 바이오 종목을 꼽으라면 HLB가 빠지지 않습니다. 조만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이 회사의 간암 신약 후보에 대한 시판허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시판허가를 받아내면 ‘제2의 셀트리온’이란 칭호도 아깝지 않을 겁니다. 바이오산업에 새롭게 뛰어든 회사가 국내 최초로 미 FDA로부터 항암제 허가를 받는, 한국 제약·바이오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업적을 달성하는 것이니까요.

HLB 주주들이 기대하는 미래는 신약 개발 성과로 스타트업에서 글로벌 제약사의 반열에 오른 애브비나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사례일 겁니다. 아쉽지만 아직까지 한국에는 비슷한 사례가 없습니다. 좌절된 사례를 제외하면 HLB가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습니다.

이번주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병용요법 美 허가 여부 결정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0일 HLB는 10만10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작년 12월부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해 5개월 반만에 216.61%가 치솟았습니다. 시가총액은 13조2139억원으로 코스닥시장에서 에코프로비엠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과거 신라젠이 항암 바이러스 제제 펙사벡의 미국 임상 3상을 진행하면서 코스닥 시가총액 2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사진=신라젠
사진=신라젠
HLB 역시 미국에서의 신약 허가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 올렸습니다. HLB는 중국 항서제약으로부터 글로벌 개발 권리를 사들인 리보세라닙과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을 병용해 간암을 치료하는 요법의 미국 시판 허가를 작년 5월 신청했습니다. 미 FDA는 오는 16일(현지시간)까지 시판 허가 여부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업계에서는 시판 허가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입니다.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 모두 중국에서 허가를 받아 처방되고 있는 약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적인 견제가 우려되긴 하지만, HLB는 자신만만합니다. 이미 미국 국립 종합 암 네트워크(NCCN) 가이드라인 등재신청을 하는 등 미국에서의 영업에 나섰습니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주가 향방이 궁금할 겁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신약의 허가를 받은 직후엔 주가가 급락한 사례가 더 많습니다. 허가 이후에는 더 큰 호재가 나올 게 없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이 차익실현에 나서기 때문입니다. 신약 판매 수익을 따져봐도, 이미 주가가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치솟은 경우가 많습니다.

SK바이오팜, 국내 최초로 美FDA 승인 받아냈지만…

국내에서 찾아보면 HLB와 상황이 겹치는 회사는 SK바이오팜을 꼽을 수 있습니다.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에 대한 임상 개발을 직접 수행해 미 FDA로부터 시판승인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SK바이오팜은 2019년 11월 미 FDA로부터 세노바메이트에 대한 시판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듬해인 2020년 2분기 미국 시장에서 세노바메이트를 출시한 뒤 7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고요. SK바이오팜은 상장한 날 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로 형성되고 상한가로 치솟는 ‘따상’ 열풍을 시작하게 한 회사로도 유명합니다.
SK바이오팜 엑소코프리. / 사진=SK바이오팜 제공.
SK바이오팜 엑소코프리. / 사진=SK바이오팜 제공.
따상을 기록한 뒤 이틀 더 상한가를 기록한 ‘따상상상’의 후유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종가는 8만9800원으로, 상장 직후의 종가 기준 고점(2020년 7월8일의 21만7000원)의 반토막에도 못 미칩니다.

주가 부진의 원인을 꼽자면 무엇보다 실적입니다. 미국에서 신약의 시판 승인을 받은 게 바로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를 미국에 출시한 2020년엔 79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2021년에는 950억원의 영업이익을 남겼지만, 세노바메이트의 유럽 시판 승인에 따라 파트너사로부터 마일스톤(기술료)을 받은 영향이었습니다. 2022년과 2023년에는 각각 1311억원과 375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요.

SK바이오팜이 세노바메이트의 상업화에 실패한 것도 아닙니다.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매출은 가파르게 성장하는 중입니다. 올해 1분기 909억원어치가 팔렸습니다. 직전 분기 대비 17% 증가한 수준입니다. SK바이오팜도 분기 기준으로는 작년 4분기부터 2개 분기 연속으로 영업이익을 남겼습니다.

3세대 위장약 시장 선점한 HK이노엔, 고점 대비 반토막

SK바이오팜이 세노바메이트를 미국에 출시한 건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이며, 뇌전증 치료제의 특성상 빠르게 처방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럼 HK이노엔(옛 CJ헬스케어)의 사례를 살펴보죠. 국내 시장에서만이긴 하지만 HK이노엔의 케이캡(테고프라잔)은 처음으로 출시된 3세대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로, 빠른 속도로 시장에 안착했습니다.

케이캡은 출시 첫 해인 2019년 304억원어치가 팔린 뒤 △2020년 771억원 △2021년 1107억 원 △2022년 1321억원 △2023년 1788억원의 원외처방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연평균 30% 내외로 성장했습니다. 2023년에는 경쟁 약물인 대웅제약의 펙수클루(펙수프라잔)이 출시됐지만, 성장세가 오히려 가팔라졌습니다. 새로운 계열의 치료제가 시장에 진입한 초창기이기에 경쟁 약물의 등장이 시장을 키운 효과가 나타난 겁니다.
사진=HK이노엔
사진=HK이노엔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2020년 전까지는 항암치료에 주로 면역항암제 단독요법이 사용됐지만, 현재는 면역항암제와 표적항암제의 병용요법이 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쉽지만 HK이노엔의 주가 흐름도 HLB 주주들이 기대하는 바와는 달랐습니다. 케이캡을 출시한지 2년 뒤인 2021년 8월9일 증시에 상장한 HK이노엔의 종가 기준 고점은 6만9600원(2019년 8월12일)입니다. 이달 10일 종가(3만7850원)는 고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보령, 국산 신약 개발사 중 기업가치 측면의 유일한 성공사례

국산 신약 중에 개발 회사의 기업가치가 크게 성장한 사례로는 보령의 고혈압약 카나브(피마사르탄)가 거의 유일합니다. 카나브는 2010년에 국내 시판이 허가된 15번째 국산신약입니다. 케이캡, LG화학의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제미글립틴)과 함께 상업화에 가장 성공한 국산 신약 ‘3대장’으로 꼽힙니다. 시판허가를 받은지는 15년이 지났지만, 꾸준히 복합제를 출시하며 성장해왔습니다.
사진=보령
사진=보령
보령의 지난 10일 종가는 1만1000원으로, 카나브의 시판허가가 나온 2010년 9월9일 종가 2091원(이하 수정주가 기준) 대비 5배가량 올랐습니다. 역사적 고점인 2021년 4월30일의 2만1941원과 신약 허가 전의 저점(2010년 5월25일의 1303원)을 비교하면 기업가치가 17배 정도 불어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성공했지만, 1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주가의 부침이 계속됐습니다. 카나브의 허가를 받은 뒤 3개월여 동안 보령 주가는 가파르게 치솟아 2011년 1월10일 3858원까지 올랐지만, 이후 장기간의 하락세를 탔습니다. 2012년 5월23일 종가는 1429원이었습니다. 신약 허가 전의 저점 대비 겨우 9.67% 높은 수준입니다.

이후엔 2015년까지 우상향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신약 허가 이후의 고점에 물렸던 주주가 본전을 회복한 날은 2013년 3월12일로, 2년 2개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신약 성공’ 위상만 쫒았던 한미약품·일동제약

세노바메이트, 케이캡, 카나브는 모두 상업화까지 성공한 사례입니다. 상업화에 실패한 사례도 없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게 한미약품의 폐암치료제 올리타(올무티닙), 일동제약의 B형간염 치료제 베시보(베시포비르)입니다. 모두 ‘신약 개발 성공’이라는 위상을 얻기 위해 무리하게 개발을 진행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올리타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국산신약인 유한양행의 폐암신약 렉라자(레이저티닙)와 같은 계열의 약물이기도 합니다. 개발 당시 2세대 상피세포성장인자 저해제(EGFR-TKI) 계열의 첫 번째 신약의 자리를 놓고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오시머티닙)과 개발 경쟁을 벌인 바 있죠.
사진=한미약품
사진=한미약품
경쟁 과정에서 올리타의 글로벌 개발·상업화 파트너인 독일의 베링거인겔하임이 권리를 반환하는 등 이상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한미약품은 국내에서의 개발을 강행해 조건부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결국 정식 허가를 위한 임상 3상을 마치지 못하고 개발을 포기했습니다.

베시보 역시 시판허가를 받을 당시부터 우려가 많았습니다. 당시 B형간염 치료제 시장을 장악한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비리어드(테노포비르)와 같은 계열의 약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비리어드의 특허가 만료돼 복제약까지 쏟아지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길리어드가 비리어드의 후속 약인 베믈리디의 출시를 앞두고 있는 등 상업성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베시보의 처방액은 작년 기준 23억원에 불과합니다.

셀트리온처럼 한국 제약·바이오의 새 역사 쓸까

리보세라닙을 올리타나 베시보와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병용요법은 경쟁약인 아바스틴(베바시주맙)·티센트릭(아테졸리주맙) 병용요법이나 임핀지(더발루맙)·임주도(트레멜리무맙)와 비교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효능과 안전성의 이점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공개된 데이터를 봤을 때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약물을 억지로 개발하는 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실패 사례는 물론이고, 성공한 국산 신약 개발사들 중에서도 HLB와 비교할 수 있는 회사를 찾기 어렵습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성공한 적 없는 항암제의 미 FDA 승인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증권가의 제약·바이오 산업 전문가들도 HLB에 대한 평가를 보류하고 있습니다. 투자의견과 목표주가가 제시된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보고서는 2021년 1월8일을 마지막으로 끊겼습니다. 투자의견 없이 기업을 소개하는 보고서도 작년 12월13일 이후로 없습니다.
제 33기 셀트리온 정기 주주총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한 서정진 회장. / 사진=셀트리온 제공
제 33기 셀트리온 정기 주주총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한 서정진 회장. / 사진=셀트리온 제공
HLB가 성공한다면 선배 격인 셀트리온도 과거 비슷한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사채 시장에서 신체포기각서를 쓴 적 있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사기꾼’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번주가 HLB도 셀트리온처럼 한국 제약·바이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성공 사례가 될지, 공들여 검색해야 찾을 수 있는 실패사례 중 하나로 전락할지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겁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