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로자들의 가치관이 일보다 가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대한상공회의소 분석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선 생활패턴이 선진국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발전에 따른
자연적인 추세로 이해할수 있지만, 반면 근로에 대한 애착 내지 의욕이
떨어지고 있음을 함께 내포하고 있어 이에 대한 걱정도 떨쳐버릴수 없다.

대한상의가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1천2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 가족 레저 지역사회 종교 등 5개 생활영역중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5년전의 39.8%에서 38.8%로 낮아진 대신,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30.8%에서 32.1%로 늘어났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일의 중심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통계는 근로의욕의 저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것 같다.

물론 일중심의 의식이 아직도 절대적 비중에서는 가장 많고 특히 일의
목적에 대해 선진국의 "경제적 대가"보다 업무상의 "보람과 자기충족"을
중시하는 긍정적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분석도 함께 나와 아직은 크게
우려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또 경제발전에 따른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고 거스를수
없는 대세로 볼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것은 그것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획기적인 노동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원동력이
저해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근로시간을 줄여 여가를 늘리더라도 전체적인 근로효과는 더 높게
나타날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노동생산성 수준은 부가가치 생산액기준으로 선진국의 절반정도에
불과하다.

시간으로 거의 2배를 일해야 똑 같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낼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사정은 도외시한채 소득수준이 다소 높아졌다 해서 근로시간단축
논의가 일고, 일에 대한 열정이 예전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면 큰 문제가
아닐수 없다.

국가경제 차원에서 뿐아니라 근로자 개인입장에서 보아도 그러한 의식
변화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못된다.

앞으로의 근로환경은 무한한 노력과 의욕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15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내용만 보아도
그같은 환경변화는 쉽게 예측된다.

30대기업그룹의 상당수가 연봉제 등 능력급제를 추진하고 있고, 임금동결
등 비용줄이기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자리는 계속 줄고있는 실정이다.

이런 판국에 섣불리 선진국흉내를 내다보면 국가차원에서 뿐아니라 근로자
개인에게도 패배를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올수 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실정으로 보아 일에 대한 중심성이 낮아지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심각한 불황국면에서 우리의 근로의식은 과연 이대로
좋은지 우리 모두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