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호학" (굳게 믿고 배우기를 즐겨하라) 논어의 한 구절이다.

지금 전국 곳곳에 퍼져있는 2백35개 향교에는 이 넉 자자를 담은 액자가
걸려있다.

한국 유림을 대표하는 최근덕 성균관장 (63.성균관대 교수)이 내린
지시에 따른 것이다.

유교를 독실하게 믿고 공부에 매진하라는 엄명인 셈이다.

최근 유교의 종교화를 선언했던 최관장은 유학이론을 현대화하고
유림조직을 대중화하는데 여념이 없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위해서는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윤리가 바로서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실현시키기위한 노력이다.

유교의 종교화란 결국 유교체제의 현대화라는게 최관장의 설명이다.

성균관대학내 유림회관으로 그를 찾아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바른
자세에 대해 고견을 물었다.

차 한잔을 사이에두고 마주앉은 최관장의 열변에서 고전과 현대학문를
넘나드는 그의 깊은 한학열기를 느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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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해 보이십니다.

특별한 건강 비결이라도 있는지요.

<>최관장 = 아침에 근처 야산에 오르는 것 이외에 별다른 활동은
없습니다.

마음을 정갈하게 다듬고 욕심을 내지 않으면 육체도 건강해지는 것
아닙니까.

-유림을 대표하는 성균관장에 오르셨는데요.

유교에 입문하게된 특별한 동기가 있었는지요.

<>최관장 = 숙명적인 선택이었던 같아요.

어릴때는 유학공무 만 강요하는 조부를 피해다니기도 했습니다.

일제시대때 다녔던 국민학교에서는 조부의 엄명으로 창씨개명도
하지않고 상투도 자르지 않았지요.

그게 학우들의 놀림감이 됐고 조부를 원망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대학입학때는 원래 농대 수의과를 가려했는데 이상하게도 동양철학과를
선택하게 됐어요.

이후에도 한문공부가 진저리나 유학은 생각치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설도 써보고 잡지사에 취직도 했지요.

그런데 성균관대에서 유학을 지킬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며 교수로
오라는 제의가 있었습니다.

이상한 힘에 이끌려 결국 이자리로 오게된 겁니다.

-최관장 같은 분이 계시니 우리 전통이 살아남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관장 =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인기자취 (다른 사람은 버리지만 나는 갖는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새옷 새목소리로 유교를 다듬고 가꾸어 새롭게해야한다, 우리 민족은
결국 이것이라야 산다고 믿고있습니다.

- 가훈이 "백인"이라고 들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바람직한 가정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최관장 = 우리는 지난 1백여년동안 가치관의 혼돈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분명하게 알지 못했지요.

이를 바로 잡는 길은 교육 밖에 없습니다.

교육중에서도 가정교육은 가장 중요하지요.

가정교육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어머니가 아이의 가치관 형성을 좌우합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생활기준을 제시하는 존재입니다.

바른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합니다.

-사회교육도 가정교육 못지 않을 텐데요.

<>최관장 = 가정교육이 인성을 가르친다면 학교는 지식과 인성을 동시에
가르치는 장입니다.

선생님들의 역할이 크지요.

덕망있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도덕성 바로세우기"에 나서야합니다.

사회적 영향력이 가장 큰 언론에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TV드라마는 도덕성 파괴현장을 너무나 자주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습니까.

-현재 우리는 전직대통령을 구속하는 등 커다란 격변기를 맞고 있습니다.

사회전체가 큰 혼란에 빠져들고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최관장 = 크게 3가지로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첫째 과연 전직대통령에만 돌을 던질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값을 치를지는 몰라도 죄의식은 느끼지 못할 겁니다.

조국을 구하기위해 쿠데타했다고 강변합니다.

그들의 이같은 행태는 우리 시대 도덕성 상실의 전형입니다.

전통보전 노력없이 지낸 지난 1백년이 결국 이시대 이런 모습으로
곪아 터진 것입니다.

둘째는 현정권이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했는데 역사 바로잡기는 역사가
들의 몫입니다.

특정 당파에 의해 동시대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것은 또다른 왜곡을
낳을수 있습니다.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수 있다는 얘기지요.

따라서 현정권은 소급입법이 아닌 실정법으로 그들을 단죄할수 밖에
없습니다.

셋째는 국민이 냉정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시대의 아픔을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야할 정치권이 오히려 도덕성 상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4당이 서로 욕하고 헐뜯는 것은 또다른 도덕성 상실을 부채질할
뿐입니다.

목불인견입니다.

-유림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최근 개혁정책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최관장 = 개혁에서 "혁"자는 원래 주역에 나오는 한 괘입니다.

주역은 혁괘를 설명하면서 오후 3-4시가 넘어 추진할것(혁 기일내부),
3번씩 국민의 뜻을 물어가며 추진할 것(혁 언삼취)이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위기가 익었을때, 국민의 뜻을 충분히 이해할 때라야만 개혁은
성공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요.

오늘 우리정부가 추진하는 개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최관장께서는 조광조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개혁작업과 관련, 조광조라는 인물에서 배울점이 많다고들 합니다.

<>최관장 = 조광조는 사상통일이라는 차원에서 개혁에 접근했습니다.

유교라는 통치이념에 맞게 통치구조를 재편하려 시도했지요.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수구세력에 밀려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과격한 개혁추진이 반대세력에 밀렸던 겁니다.

급진적 개혁은 실패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흔히들 "효"는 우리의 최고 경쟁력 상품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시대의 효를 돌아볼까요.

<>최관장 = 우리 유교가 주장하는 효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Give and Take" (주고 받기)라야 합니다.

현대 가정에서 자식을 효자로 만드는 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만이 효를 받게됩니다.

그릇된 모습의 부모에게 효를 다할 자식은 이제 없습니다.

-얼마전 최관장께서 유교의 종교화를 선언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의 종교인가요.

<>최관장 = 종교화에 촛점을 맞추는데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유교의 종교화라는 의미는 유교의 현대화라는 말입니다.

우리 전통설화중 투금탄 얘기가 있습니다.

두 형제가 금 두 덩이를 주었다가 이를 강물에 버렸다지요.

상대방이 없었더라면 자기가 금 두덩이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형과 아우가 이를 부끄러이 여겨 금덩이를 모두 강물에 버렸다는 얘기
입니다.

당시 형제들이 선택할수 있는 길은 3가지 였습니다.

서로를 물리치고 금을 차지하는 방법, 하나씩 나누어 갖는 방법,
형제가 금으로 장사밑천을 마련해 돈을 버는 방법 등 입니다.

유교의 종교화, 현대화란 바로 세번째 방법을 택하자는 것입니다.

유교의 정신적인 면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측면도 강조, 양자를 조화
시킬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자는게 유교의 종교화입니다.

-그래도 일부에서는 "유교가 윤리이지 어떻게 종교라고 할수 있느냐"는
시각이 여전한데요.

<>최관장 = 이는 철저히 서양학의 영향을 받은 보수신학자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그들은 종교가 성립키위해서는 유일신, 내세관이 있어야한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진보주의학자들은 신앙체계 자체를 종교로 보아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종교에 왕도란 없는 겁니다.

실질적인 측면으로 보아도 조선조말인 1898년 고종은 유교를 종교로
선언했습니다.

정부수립이후 유교는 종교협회에 가입해왔구요.

누가 육교를 종교가 아니다라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유교의 종교화, 현대화는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지요.

<>최관장 = 제도개혁이 욧점입니다.

향교를 중심으로 교인들이 모일수있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향교에는 장의회(성직자회), 유교회(유교지부회), 신도회 등
3개 조직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도회는 유교여성회와 청년회로 구분되고요.

이를 중심으로 각 향교는 서예, 다도, 여름방학 충효교실 등을 개설
합니다.

기독교의 교회당, 불교의 사찰 등과 가르치는 내용 만 다를뿐 형식은
동일합니다.

각 도시 중심에 더 많은 향교(유림회관)를 지어 활동영역을 넓여갈
생각입니다.

이제는 종헌도 마련돼 더 체계적으로 활동할수 있을 겁니다.

-종교화된 유교를 이끌어갈 기둥이 있어야 할텐데요.

<>최관장 = 우리의 이상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윤리가 바로서고
도덕이 실현되는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니다.

이를위해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춘추 예기 역경등 4서5경을
경전을 삼고 있습니다.

경전의 이해를 돕고 누구도 쉽게 접근할수 있도록 쉬운경전서를 계속
펴낼 생각입니다.

-내일은 마침 예수탄생일으로 기독교의 큰 잔치날인데요.

다종교 시대에서 유교가 다른 종교와 공존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최관장 = 유교는 불교 만큼이나 종교성이 덜합니다.

종교간 대화의 가교 역할을 할수이지요.

종교간 배타적인 것은 있을수 없습니다.

종교협회의 회장을 유교측에서 줄고 맡아왔다는 것은 이를 말해줍니다.

[[ 대담 = 이진원 부국장대우 정치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