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야 어떻건 나만은..."하는 자기중심의 논리가 우리 사고의 틀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대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요즘 세태를 눈여겨 보면 그런
생각이 한층 굳어지는 것만 같다.

인정사정 보지않고 살아야 떳떳한 세계인이 되어 선진국민이 될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자아상실"이라도 당해 뒤쳐지는 것인양 생각하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이웃간에 사소한 이해가 엇갈려도 격한 감정에 휩싸여 옛날에
고을 "원님"이라도 찾아가듯 법의 심판을 받으려 든다.

지난해의 고소고발이 일본의 100배인 59만여건에 달한다는 관계기관의
통계도 이런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며칠전 담장을 넘어온 이웃집의 나무가지를 잘라버렸다가 고소를 당해
3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매정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보도되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30만원은 30년을 길러온 나무가지를 허락도 없이 베어 버림으로써 그
주인이 받은 정신적고통에 대한 댓가라고 한다.

420만원을 손해배상액으로 청구했지만 그것의 14분의 1인 30만원만 지급
하도록 판결이 난 것도 흥미롭다.

"민법" 제204조에는 "수지, 목근의 제거권"이라는 조항이 있다.

"인접지의 수목가지가 경게를 넘은 때에는 그 소우자에 대하여 가지의
제거를 청구할수 있다"는 항목아래, 일단 청구를 했는데도 제거하지 않으면
청구자가 그 가지를 제거할수 있다는 항목도 있다.

결국 가지를 쳐달라고 청구하지 않고 베어버린 것이 죄였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인접지의 수목뿌리가 경계를 넘을 때는 임의로 제거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어, 만일 이 사건에서 그 뿌리를 제거해 버렸다면 어떤
판결이 났을지 몹시 궁금하다.

문제는 담 하나를 사이에둔 "격장지린"간이 에런 사소한 일로 시비를
벌이다가 법정에까지 갔다는 것과 그들의 주거지가 서울에서도 내로라는
부촌인 "연희동"이라는 점이다.

일상생활에서 이웃과 조화와 화복을 유지하려 들기는 커녕 법적 투쟁만
일삼는 불화에 가득찬 사회기풍을 보이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이웃을 뜻하는 "린"은 읍을 나타내는 부방변과 미아래에 발이 왔다갔다
한다는 뜻을 지닌 "천"자를 받친 것으로, 마을에서 쌀을 주고 받으며 서로
왔다갔다 한다는 데서 생긴 글자다.

이웃끼리 쌀을 주고 받으며 오가기는 커녕 하낱 나뭇가지 때문에 매정하게
이웃을 고소하는 세태를 보면 "팔백금으로 집을 사고 천금으로 이웃을
산다"는 우리 속담이 꼭 맞는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8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