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와 개방화에 대한 논의가 갑자기 활발해졌다. 과연 국제화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너도 나도 한마디씩 주장을 펴고있다. 대부분의
주장들이 물론 틀린것은 아니다. 각각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는 주장들
이다.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실천에 옮기면 국제화는 한걸음씩
진전될 것이라는 것도 부인할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국제화수준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경제의
국제화의 한 좌표를 읽어볼수는 없을까.

역사적으로 한국의 국제화수준을 살펴보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까지
에는 한국경제는 국제무역을 하였다. 장보고가 남해를 중심으로 해상무역
을 장악하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로 보아 당시 한국은 해상무역을 통하여
중국 일본등과 교역을 하고있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예성강을 오르내리
는 무역상이었고,이를 통하여 축적한 자금으로 후삼국을 통일한 것으로 기록
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1년에 몇차례씩 조선사신이 중국을 왕래할때에만
무역을 하던 이른바 조공무역을 제외하고는 외국무역이 없었다. 다시말하면
국제화수준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후퇴한 것이다. 외국과 통상하는 것은 간첩
행위를 하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하였다.

그러한 봉쇄경제는 구.미.일의 제국주의가 중국과 한반도를 점령하는
19세기후반기까지 계속된다. 결국 1876년의 굴욕적인 강화도조약에 의하여
타의에 의한 개항을 시작하게 되고 그것은 대한제국의 일본식민지화로
연결된다. 이때의 국제화는 선진자본의 세계시장분할 과정에 봉건
조선경제가 편입되는 과정 바로 그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던
이러한 류의 국제화는 한국민의 부를 증가시키지도 못하였고 한국경제의
생산력을 발전시키지도 못하였다.

지난 30여년동안 한국경제는 의국무역을 통한 고속성장을 이룩하였다.
60년대이후 외국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여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하였고
국내의 값싼 노동력을 동원하여 표준화된 상품을 대량 조립생산하여
세계시장에 수출하였다. 수출하지 않을수 없는 이유는 도입한 외자의
원리금을 상환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한국경제의 국제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하기를 30여년,그동안 한국경제는 한국자본주의
라고할 수 있을정도로 물질적 토대가 구축되었다. 다만 그 성격은 외국
과의 교역이 없이는 하루도 생존할수 없는 가공무역형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가공무역형이란 외국으로부터 자본과 기술 그리고
중간재를 도입하여 국내의 공장에서 국내 노동력에 의하여 단순가공조립
하여 생산한 상품을 외국시장에 수출하는 자본순환을 계속하는 경제구조를
말한다. 이러한 구조는 이미 한국경제가 오래전부터 국제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 분야에 종사해온 사람들에게 국제화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국제화가 새삼스럽게 논의되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거기에는 두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지금까지 국제화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국내정치부문,그리고 경제라 하여도 외국으로부터 보호되거나
내수중심의 산업에 종사하여온 사람들,교육 문화 행정 내부등 외국과 관계
없이 국내적으로 움직여온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닥쳐온 국제화바람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지금까지 온상속에 살아왔거나 세계와는 거리를 두고
국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거래해온 부문에서 우루과이라운드와 같은
개방의 바람이 불어닥치게되자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국제화가
갑자기 중요해진 것이다. 이를위하여 정치제도의 선진화,교육제도의 선진화,
행정규제의 완화등이 국제화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동안 생산 교환등 각부문에서 국제화를 진행시켜온
부문에서 국내외의 급격한 여건변화로 종래와는 다른 대응을 하여야
국제경쟁력을 가질수 있다는 인식에서 나오는 국제화 논의이다. 국내외의
여건변화중에는 한국노동력의 임금상승으로 지금까지와 같은 저부가가치
산업으로는 더이상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얻기가 어렵다는 인식,우루과이
라운드 타결로 인하여 그동안 보호영역이었던 농업,서비스부문의 개방으로
위기에 몰린 이분야 종사자들,유럽의 통합과 북미자유무역지대협정(NAFTA)의
발효등 지역주의화에 따른 경쟁력약화의 위기의식등이 국제화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분야에서 주장되는 국제화는 기술의 선진화 주로 설계
디자인기술의 선진화,각종 제도의 개혁 주로 경제활동에 대하여 그동안 정부
가 간섭하고 규제해오던 분야에 대한 규제의 철폐내지는 완화가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것들은 부가가치를 높이거나 생산요소가격을 낮추고 거래
비용을 줄여 국제경쟁력을 높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역시
설계기술 디자인 기술등 선진기술을 보유하는 것이고 정부규제완화라고 할
수있다.

현단계에 있어 한국경제의 국제화는 하나는 국제화를 해오던 생산부문에서
한단계 높은 국제분업속으로 위상을 높이기 위한 기술발전을 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후진적 제도나 관행으로 인하여 거래비용이 높았던
것을 제도개혁을 통하여 국제수준으로 낮추려는 것이라고 평가할수 있다.
이 두가지는 모두 현단계 국제화의 주요 과제가 된다고 하겠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과거에 보호되던 부문의 개방이 수반된다. 그 부문만 볼때
100년전의 제국주의의 침략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는 하나 한국경제는
이미 국제화를 진행시킨 제조업부문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과거와
동일하다고 볼수는 없다. 결국 지금의 국제화는 제국주의 침략의 회생물이
되는 것이 아니고 선진화를 위한 국민적 지력(Knowledge Power)을 향상시키
기 위한 개혁으로 평가될수 있다. 다만 과거에 보호되던 부문에 대하여 무리
없이 관리를 잘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