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생화의 혜택 그린 '야생 쪽으로' 출간
그대로 두니 죽은 땅이 살아났다…자연이 주는 조화의 영감
땅은 예로부터 생업의 근간이었다.

농부들은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먹여 살렸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와도 땅은 맞물려 있었다.

급변하는 정세에 휘둘리는 농민들의 삶은 크누트 함순이나 박경리 같은 소설가의 작품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이야기 속에도 흔히 나타났다.

땅은 이렇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농부의 삶과 깊이 얽혀 있었다.

영국인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그들에게도 땅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농부라는 자부심도 넘쳤다.

하지만 그들의 자부심과 직업정신은 시대의 변천과 함께 쇠락했다.

농사의 채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영국인 부부 찰리 버렐과 이저벨라 트리도 이런 자부심 넘치는 영국 농부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이들 부부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경작하기로 했다.

점점 황무지로 변해가는 영국 동남부에 위치한 '넵 캐슬'에서였다.

그대로 두니 죽은 땅이 살아났다…자연이 주는 조화의 영감
찰리는 많은 보조금을 받는데도 적자를 내고 있던 농사를 흑자로 전환할 수 있을 거라 낙관했다.

그는 조부모의 육체적 쇠락과 영농의 기계화 부족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

젊은 그가 농사에 나섰고, 새 기계도 들여왔다.

성공이 눈앞에 다가온 듯했다.

그는 땅을 쟁기와 로터베이터로 갈았다.

제초제를 뿌리고, 써레질하고, 혼합 씨앗을 땅에 뿌렸다.

비료도 줬고, 잡초를 베는 작업도 정기적으로 반복했다.

그러나 이런 수고로움이 수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세계시장이 확대되면서 이들 부부가 생산한 농산물이 아시아, 러시아, 호주, 남북 아메리카의 저렴한 곡물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을수록 재정 상태는 악화했고, 땅도 부자연스러운 상태로 변질했다.

그대로 두니 죽은 땅이 살아났다…자연이 주는 조화의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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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2001년 마침내 중대한 결심을 했다.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토지를 자연 그대로 놔두기로 한 것이다.

원래의 "경작되지 않은" 상태로 되돌리는 '재야생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경작 작물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땅에 주었던 질산염과 인산염의 농도를 줄이는 걸 의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곤충, 나비 떼, 호박벌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사슴들이 세렝게티의 임팔라 떼처럼 조용히 땅을 돌아다녔다.

떼까마귀와 갈까마귀가 사슴들의 등에 앉아 기생충들을 쪼아먹었다.

새끼 사슴들이 태어났다.

이저벨라 트리의 말처럼 "더 부드럽고 조화로운 무언가가 삶에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니 죽은 땅이 살아났다…자연이 주는 조화의 영감
재야생화한 지 8년 만인 2009년, 땅은 희귀동물로 가득 찼다.

박쥐, 조류 등 시급히 보호해야 할 15종을 포함해 보존 중요성이 있는 60종의 동물이 모여들었다.

76종의 새로운 나방도 들어왔다.

쇠백로, 알락해오라기, 검은머리흰죽지, 삑삑도요 등 이따금 찾아오는 동물도 늘었다.

멧비둘기는 영국 전역에 5천 쌍이 채 되지 않는데, 이 땅에서만 16마리나 발견됐다.

여기에 53마리의 롱혼 소, 42마리의 다마사슴이 합류했다.

땅은 활기를 되찾았다.

각종 생물이 모이면서 농토는 새로운 경관을 조성했다.

그대로 두니 죽은 땅이 살아났다…자연이 주는 조화의 영감
재야생화 작업에 참여한 작가이자 '넵 황무지 프로젝트 관리자'인 이저벨라 트리는 이런 재야생화 과정을 세심하게 글로 기록했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야생 쪽으로'(글항아리)는 남편 찰리와 그가 황무지에서 보낸 10여 년 동안 벌어진 일들을 담았다.

자연(自然)이 '왜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인지 책은 상세히 보여준다.

인간의 손길이 최소화됐을 때, 자연은 나름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길을 서서히, 그리고 올곧게 찾아간다.

"자연적 과정들이 일어나도록 허용하는 것, 충족해야 할 목표를 미리 정하지 않는 것, 계획을 좌우하는 어떤 종이나 숫자도 없는 것은 전통적인 사고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다…. 재야생화는 믿음의 도약이다.

여기에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그냥 느긋하게 앉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하는 것이 포함된다.

"
504쪽. 박우정 옮김. 2만5천원.
그대로 두니 죽은 땅이 살아났다…자연이 주는 조화의 영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