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우울증 앓는 유튜버 이모르 "아픔 지닌 개인 인생이 예술작품"

"각자의 삶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 사람의 우울한 감정이나 상처, 성장 과정을 듣고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
구독자가 18만명에 이르는 인기 유튜버 '이모르'(35)는 작년 7월부터 자살자 유가족, 사회초년생인 트랜스젠더, 텔레그램 n번방 사건 피해자 등 내면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유튜브에서 방송하고 있다.

이모르는 지난 4일 연합뉴스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형사나 전문 상담사가 아니라서 피해자가 처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면서 그날 하루 기분이 괜찮아졌다면 그걸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SNS세상] 그림으로 '코로나블루' 위로하는 유튜버…"우울감 전시해도 돼"
이모르는 2016년 자해, 폭음, 폭식을 일삼는 등 우울했던 20대 시절을 고백하려고 유튜브를 시작했다.

2005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는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공개하고 지인을 초대해 자신의 우울을 털어놨다.

그러다가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구독자들에게도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신과에서는 내가 '경계선 성격장애(이상 성격으로 감정 기복이 심한 성격 장애)'를 앓고 있어서 충동적인 행동을 자주 하는 데다 대인관계가 불안정하다고 했다"며 "처음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우울증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어서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댓글을 보니까 나처럼 속앓이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라고 회상했다.

이모르는 지난해 7월 영상 출연을 원하는 사람을 모집했다가 열흘 만에 신청자가 500여명이나 몰려 깜짝 놀랐다.

1년 만에 누적 신청자가 2천여명에 달했고 그중 100명이 출연했다.

그는 지원자가 몰린 데 대해 "우울함이나 정신질환은 의지나 나약함이 문제라고 지적받는 경우가 많다 보니 주변인에게 털어놓기 어렵다"며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 보니 혼자서 끙끙 앓다가 유튜브에서라도 후련하게 털어놓고 싶은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모르는 가장 기억에 남는 출연자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70대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10대나 20대 젊은 층과 주로 방송하다가 나이가 지긋한 출연자와 함께 영상을 찍은 경험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손녀가 사연을 보낸 덕분에 만나게 된 할아버지는 영상을 찍는 내내 관록이 묻어났다.

그는 "'어떤 걸 그리고 싶냐'고 여쭤봤더니 '아내가 탄 휠체어를 밀고 같이 산책을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며 "아내가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현실에서 못다 한 마음을 그림으로나마 표현하고 싶어하셨다"고 전했다.

인기 유튜버지만 정작 유튜브로 얻는 수익은 미미하다.

가정폭력, 낙태, 자살 등 카테고리를 다룰 경우 유튜브의 '광고주 친화적인 콘텐츠 가이드라인'에 위배돼 수익 창출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는 "내 채널은 한 개인이 우울함을 털어놓을 수 있는 창구이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부조리한 사건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이런 콘텐츠로는 수익이 나지 않으니 우울한 소재를 다루는 개인 채널들은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했다.

[SNS세상] 그림으로 '코로나블루' 위로하는 유튜버…"우울감 전시해도 돼"
이모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코로나 블루' 증상 환자가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집 안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친구 등 주변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울감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가 사라졌다"며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게 범법행위는 아니지 않느냐. 우울함을 전시해도 좋으니 너무 외로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주변인 도움을 구해보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