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노동력의 중국에 생산 거점을 확대해온 애플의 정책 변경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대도시 대상으로 한 중국 당국의 강력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봉쇄 정책과 이에 따른 납기 지연 문제, 중국 부품 공급사들의 잇따른 부정 이슈 등의 이유가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애플의 생산 거점 중심축이 중국에서 베트남, 인도 등 타 국가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에어팟 프로2 중국 아닌 베트남에서 생산"

26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애플 제품 출시 계획을 정확하게 맞추기로 유명한 대만TF 인터내셔널 증권의 궈밍치 애널리스트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애플이 하반기에 출시할 '에어팟 프로2'를 베트남에서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그는 "에어팟 프로2 생산 공장 전환이 가능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베트남 공급망이 복잡하기 않기 때문"이라며 "베트남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인프라, 노동력 측면에서 생산 환경이 준수하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내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른 강력한 도시 봉쇄 정책으로 애플 제품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등 생산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에어팟 제품 생산업체는 럭스쉐어와 고어테크다. 궈밍치 애널리스트는 "럭스쉐어와 고어테크 입장에서는 베트남에 생산 설비를 설치하는 게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애플이 생산 거점을 변경할 수 있다는 전망은 최근 곳곳에서 제기됐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궈밍치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해 "애플은 이미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최근 봉쇄로 이런 흐름이 더욱 가속하게 됐다"며 "중국 내 일부 생산 시설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은 이제는 제안 단계를 넘어 액션의 단계가 됐다"고 보도했다.
에어팟 프로2 렌더링 [사진=애플인사이더]
에어팟 프로2 렌더링 [사진=애플인사이더]
중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준 상하이 봉쇄는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에어팟 등 다양한 제품 생산을 절대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애플에 커다란 경제적 피해를 안길 것으로 전망된다. 궈밍치 애널리스트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그는 상하이와 장쑤성, 저장성 등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광역 경제권인 창장삼각주 봉쇄의 영향으로 이번 분기 애플의 출하량이 대략 30~40%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애플이 다른 공급자를 찾아야만 출하량 감소율이 15~25%까지 완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애플도 중국 봉쇄의 여파가 반영되는 2분기에 실적 악화를 예상했다. 루카 마에스트리 애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28일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코로나19 및 반도체 칩 부족 등 공급망 차질로 2분기 매출액이 최대 80억달러(한화 약 10조1400억원)가량 타격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맥북 프로 고객 배송 5주까지 지연

이번 봉쇄가 특히나 중국 전자·반도체 공급망에서 중요 역할을 하는 창장삼각주를 강타하고 있다는 점이 애플에 큰 타격 요인이다. 맥북의 경우 전량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사인 대만 광다컴퓨터(Quanta) 상하이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이 공장은 봉쇄 여파로 3월부터 가동을 멈췄다가 지난달 하순에야 부분적으로 가동을 재개했다. 이 때문에 맥북 프로 제품의 경우 주문 고객 배송이 최대 5주까지 지연됐다.

세계 전자산업 공급망에서 매우 중요한 장쑤성 쿤산시도 봉쇄되면서 아이폰 등 다양한 애플 제품을 조립·제조하는 대만 기업 폭스콘의 공장 두 곳이 운영을 중단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3월에는 중국의 기술 허브로 불리는 선전시가 봉쇄되면서 폭스콘 선전 공장들이 수일간 가동을 중단했다. 전 세계에 공급되는 아이폰 대부분이 만들어져 '아이폰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허난성 정저우의 폭스콘 공장도 이 일대 부분 봉쇄의 영향으로 근로자들을 충분히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 21일 "애플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인도, 동남아시아 등 생산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가 전한 내용 대부분 SCMP의 보도 내용과 유사했던 가운데 지난해 발생한 중국 내 대규모 정전 사태도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이유라고 보탰다. 통상 애플 기기를 만드는 첨단 공장의 경우 정전으로 인해 공장이 멈췄다가 재가동할 경우 수백억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플과 위탁 생산업체들은 인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를 중국의 대체 지역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이 매체의 분석이다. 관계자는 대만의 폭스콘, 위스트론이 이미 인도 내수를 위해 현지에서 아이폰이 생산되고 있다고 전했고 수출용 아이폰 생산 확대도 논의되고 있다.

BOE 무단 설계 변경에 애플 '극대노'

애플과 부품 공급 협약을 맺은 중국 업체들의 부정 이슈도 생산 거점 이전설에 불을 붙이고 있다. IT 전문매체인 더버지 등에 따르면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는 애플과 맺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공급 계약이 최근 파기될 위기에 놓였다. BOE는 오는 6월부터 애플의 아이폰14에 적용될 6.1인치 OLED 패널 약 5000만장을 생산할 계획이었다. 이는 전체 아이폰14 디스플레이 패널 공급량의 25% 수준으로 계약 규모는 약 5000만위안(약 1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2월 BOE가 허용 없이 무단으로 애플의 박막트랜지스터(TFT) 회로 배선 설계를 변경한 사실이 애플에 적발되면서 BOE의 신뢰도에 크게 금이 갔다. 이에 BOE는 애플 본사로 담당자를 보내 해당 사건에 대해 해명하고 아이폰14용 OLED 패널 생산을 승인받으려 했지만 애플이 답변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애플은 아이폰14에 들어갈 전면 카메라로, 기존에 쓰던 중국산 대신 LG이노텍 제품을 사용하기로 했다. 아이폰에 전면 카메라를 납품할 예정이었던 중국 업체에 품질 문제가 생기면서 LG이노텍이 이를 공급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전면 카메라로 LG이노텍 제품을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CMP는 "중국의 주요 금융·제조업 중심지인 상하이와 장쑤성 일대의 엄격한 봉쇄로 애플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며 "코로나19 혼란 이후 정상화하는 베트남과 인도가 애플의 공급망에서 더욱 큰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부터 중국의 공급망이 심각하게 교란된 상황에서 1분기 폭스콘 인도 공장의 아이폰13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50% 급증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주목받은 상황에서 인건비와 토지비가 중국보다 싼 인도의 장점이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되는 상황이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애플은 자신들이 설정해 놓은 설계도와 시스템이 훼손되거나 외부 세력이 개입하는 걸 극도로 꺼려한다"며 "중국 당국의 예기치 않은 개입이 장기화되면서 애플의 인내심이 바닥났고, 부품 공급사들의 부정 이슈도 계속되는 만큼 생산 거점의 대전환이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