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허 전 중국 부총리와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지난 1월 스위스에서 회담했다. 사진=AP
류허 전 중국 부총리와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지난 1월 스위스에서 회담했다. 사진=AP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류허 전 중국 부총리(71)가 지난 3월 은퇴한 이후에도 여전히 지도부의 경제·금융 회의에 참석해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3일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시 주석이 가장 신임하는 측근인 류 전 부총리가 여전히 미국과 관련한 문제를 중심으로 중국의 주요 경제 문제에 정기적으로 조언을 하고 있다"며 "그는 공식 직책에서 모두 물러났지만 경제 문제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중국 지도부가 류허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높게 보고 있으며, 그에게 국내 경제 정책의 핵심 문제들, 무역과 경제 문제에서 미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류 전 부총리는 미국 세튼홀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하버드대에서 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은 미국통이며, 친시장주의자로 분류된다. 시진핑 집행부 1~2기인 2013~2023년 시 주석이 주석(위원장)을 맡고 있는 공산당 중앙재경위원회의 판공실(사무국) 주임을 지냈다. 시진핑 2기(2018~2023년)에는 부총리로 선임됐다.

류허는 부총리였지만 리커창 총리보다 더 큰 권한을 행사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와의 무역전쟁 당시 시 주석의 전권을 받고 수석 협상가로 나서 2020년 1월 1차 무역합의에 서명했다. 외국 정부와 투자자에게는 친숙한 인물이다.

퇴임 직전인 지난 1월에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옐런 미 재무부 장관과 회담을 하고 경제 분야에서 빚어진 각종 갈등 사안을 잘 소통하며 관리해 나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는 중국 고위 관료의 비공식 은퇴 연령인 68세를 훌쩍 넘긴 탓에 지난 3월 출범한 시진핑 집권 3기 지도부에서는 이름이 빠졌다. 4월에는 중국 중앙재경위 판공실 주임도 허리펑 현 부총리에게 인계했다.

하지만 중국이 1월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이후에도 경제 회복이 더딘데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강화되는 상황이어서 류 전 부총리가 다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독일 키엘세계경제연구소의 류완신 선임 연구원은 SCMP에 류허가 여전히 자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중국 정부가 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놓고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했다.

그는 "이는 우리가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로부터 수집한 정보들과 일치한다"며 "류허의 경험과 전문지식, 다른 나라의 핵심 의사결정권자들과의 네트워크와 연결은 중국이 서방 경제를 중심으로 다른 나라들과 경제 관계를 재건하는 데 자산이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 컨설팅업체 로디움그룹의 마크 위츠케 애널리스트는 "류허가 외국 기업의 역할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그가 여전히 활동한다는 것은 중국 내 외국 기업에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진단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