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기업 직원인 마커스 맥닐(32)은 지난달 블랙프라이데이 때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매년 자신이나 아내를 위해 옷을 샀지만 올해는 꾹 참았다. 크리스마스에 두 살배기 아이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서다. 맥닐은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올해는 아들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주기 위해 11월에 돈을 쓰지 않고 일을 더 했다”고 말했다.

11월 넷째주 금요일인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의 최대 쇼핑 대목이다. 하지만 올해는 고물가 속에 지갑을 닫은 소비자가 늘면서 소비가 위축됐다. 소비 감소는 생산 감소로 이어져 경기 침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쇼핑 대목에 닫힌 지갑

"역대급 할인에도 지갑 안열어"…美 쇼핑 대목 덮친 'R의 공포'
미국 개인 소비지출의 최대 40%가 블랙프라이데이부터 연말까지 집중된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때인 2020년과 지난해에도 전달보다 소비액이 늘었다. 지난달 블랙프라이데이 직후 나온 통계 자료도 견조한 소비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어 오르게 했다. 미국 상위 100대 소매업체 중 85개의 판매 자료를 분석한 어도비애널리틱스는 지난달 25일 미국의 온라인 쇼핑액이 사상 최대인 91억2000만달러(약 11조87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공식 통계를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다. 8월부터 10월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없던 미국 전체 소비가 미국의 쇼핑 대목인 11월에 오히려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미 상무부가 이날 공개한 11월 미국 소매판매액은 전달보다 0.6% 감소했다. 월가 예상(-0.3%)을 밑돌았으며 지난해 12월(-2.0%) 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물론 불경기 때 가장 먼저 소비를 줄이는 전자제품과 가구, 자동차 같은 내구재 판매액이 감소할 것이라는 점은 월가도 예상했다. 하지만 할인율이 높으면 구입이 늘어나는 비내구재 소비까지 위축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존을 비롯한 거대 전자상거래업체들은 올해 블랙프라이데이 때 역대급 할인 행사를 벌였다. 그런데도 소비 진작 효과가 없었던 게 월가엔 충격으로 다가왔다. 11월 미국의 온라인 판매액도 한 달 전보다 0.9% 감소했다. 미국인들이 지갑을 굳게 닫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소비 줄자 생산도 위축

미국에선 그동안 코로나19 기간에도 꾸준히 늘어난 저축액을 바탕으로 소비가 증가해왔다. 하지만 저축률이 급락하면서 소비 여력도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지난 10월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률은 2.3%로 2005년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소비는 미국 경제의 70%가량을 차지하는 지표다. 소비가 위축되면 미국 경기가 휘청거릴 수 있다.

소비가 움츠러들 기미를 보이자 기업들도 생산을 줄이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산업생산은 한 달 전에 비해 0.2% 줄었다. 시장 예상치(0.1%)를 밑돌았을 뿐 아니라 10월(0.1%)에 비해서도 감소했다. 업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업이 5개월 만에 감소(-0.6%)한 영향이 컸다. 뉴욕연방은행이 집계하는 12월 엠파이어스테이트 제조업지수도 시장 전망치(-1.0)를 크게 밑도는 -11.2를 기록했다. 한 달 전에 비해선 15.7포인트 하락했다. 필라델피아연방은행의 12월 필라델피아 제조업지수도 전망치(-12)보다 낮은 -13.8이었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이날 뉴욕증시는 급락했다.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2.25%, S&P500지수는 2.49% 하락했다. 나스닥지수는 3.23% 급락한 채 마감했다. 미국 소비를 반영하는 아마존 주가도 3.13% 내렸다. 미국 투자은행 베어드의 마이클 앤토넬리 전무는 WSJ에 “시장은 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침체를 염려하고 있다”고 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