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솨이/사진=EPA
펑솨이/사진=EPA
중국 내 '테니스 공주'로 불리는 펑솨이(彭帥, 35세)가 자신의 웨이보에 중국 전 국무원 상무부총리이자 제18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낸 장가오리(張高麗, 75세)에 대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를 폭로했다. 특히 장가오리의 성폭행 현장은 그의 자택이었고, 아내 캉제(康潔)가 직접 망을 봤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펑솨이는 지난 2일 밤 10시 7분 자신의 웨이보 공식 계정에 장가오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10년 전 성폭행을 당했고, 이후 3년 전에 다시 찾아와 최근까지 내연 관계를 유지했지만 버림받았다는 글을 게재했다. 당시 상황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서술했을 뿐 아니라 본인의 심경과 처지까지 전했다.

펑솨이의 폭로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11년 중국 톈진(天津)에서 처음 만남을 가졌다. 당시 펑솨이는 톈진 테니스 팀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톈진시 서기였던 장가오리가 그를 찾아와 한 차례 관계를 가졌다는 것.
장가오리 전 부총리/사진=EPA
장가오리 전 부총리/사진=EPA
이후 장가오리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했고, 베이징으로 떠난 후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3년 전인 2018년 국무원 상무부총리직에서 퇴임한 장가오리는 부인과 함께 펑솨이를 다시 찾아와 그녀를 자택으로 초대했다. 펑솨이는 장가오리의 아내가 방문 앞에서 망을 보는 상황에서 관계를 요구받았고, "두려운 마음에 울며 거부했지만, 무섭고 당황스러운 상태에서 동의하게 됐다"며 "'7년 동안 잊지 못했다'는 장가오리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다시금 그를 받아줬다"고 밝혔다.

이후 두 사람은 불륜 관계를 이어왔다. 장가오리의 아내 캉제도 둘의 관계를 알고 있었지만, 묵인하고 동조했다는 게 펑솨이의 설명이었다.

펑솨이는 내연 관계를 이어오면서 내적 갈등을 겪었고, 장가오리의 변심으로 관계가 끝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불륜 관계를 유지하면서 혜택을 받거나 이득을 탐한 적이 없고, 녹음이나 영상과 같은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가오리가 권력을 이용해 이 일을 덮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펑솨이는 "당신같이 지체 높은 부총리님은 두려울 게 없다고 했지. 설령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도 혹은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라도 나는 당신과 있었던 사실을 말하겠다"고 적었다.

하지만 해당 글은 20분 만에 삭제됐고, 현재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펑솨이, 테니스 등의 검색도 불가한 상황이다. 다만, 펑솨이의 글을 복사한 글과 이미지들이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국무원은 이 같은 의혹에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에는 기업이나 정부 고위직이 지위를 악용해 부하 등 여성들의 성적 호의를 입으려 하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전통이 남아 있다"고 이번 사건을 분석했다.

펑솨이는 한때 복식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중국의 테니스 스타다. 그는 대만인 파트너 수웨이시에와 함께 2013년 윔블던 복식 우승을 차지했고, 2014년에는 프랑스 오픈에서도 복식에서 우승했다. 같은 해에 US오픈에서는 단식 준결승에 올랐다.

장 전 부총리는 국무원 부총리로 2013~2018년 중국 공산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냈다. 2002∼2007년에는 산둥 당 위원회 부서기를 맡았고, 이번 의혹이 제기된 2007∼2012년에는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맡았다. 2018년에 은퇴했다.

중국 내에서도 미투 폭로가 여럿 나왔지만 중국 공산당 고위층에 대한 첫 미투라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2018년 유명 텔레비전 앵커를 성폭력 혐의로 고발해 중국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저우샤위위안은 "검열에도 불구하고 폭로가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 보라"며 "펑솨이가 무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