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피자 가게에 12일(현지시간) 구인 전단지가 붙어 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피자 가게에 12일(현지시간) 구인 전단지가 붙어 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미국 뉴욕 맨해튼의 ‘브라보 피자’는 카운터에서 일할 직원을 수주일째 뽑지 못하고 있다. 여러 차례 공고를 냈지만 일하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다. 가게 주인은 “이렇게 채용이 어렵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구인난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실제 수치로도 확인된다. 미 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3월의 구인·이직보고서에 따르면 채용 공고가 812만3000건으로, 전달보다 7.9%(59만7000건) 증가했다. 2000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최고치다. 봉쇄령이 속속 해제되면서 숙박·식음료 부문 공고가 100만 건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하지만 실제 채용은 공고 대비 210만 명이나 적었다. 3월 채용이 전달 대비 3.7% 증가한 600만 명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같은 인력 수급 불일치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작년 11월엔 충원하지 못한 인력이 50만 명에 그쳤지만 5개월 만에 4배 넘게 확대됐다.

<미국서 공고를 내고도 뽑지 못한 인력>
작년 11월 50만
12월 110만
올해 1월 160만
2월 170만
3월 210만
*자료: 미 노동부(단위: 명)


자영업자나 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더욱 크다. 전미자영업연맹(NFIB)의 조사 결과 지난달 채용공고를 낸 회원사의 44%가 인력 충원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1970년대 이후 최대 규모였다.

비농업 부문 취업자 수는 지난달 겨우 26만6000명 늘어나 시장에 충격을 줬다. 전문가들은 최소 98만 명에서 최대 210만 명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해 왔다. NFIB의 빌 던켈버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작은 기업들은 보너스 등 유인책을 제시해도 사람 구경하기 어렵다”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실업률이 6.1%로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대량 백신 배포로 감염 위험까지 줄었는데 무슨 일일까.

재계와 학계에선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지급하기 시작한 추가 실업수당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실업수당이 지나치게 후하다 보니, 놀면서 돈만 받으려는 사례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미국 50개 주의 주당 평균 실업수당은 387달러다. 연방정부는 코로나 지원금 성격으로 매주 300달러씩 더 챙겨주고 있다. 당장 직업을 구하지 않아도 연평균 3만6000달러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소득세도 붙지 않는다. 연방정부의 최저 시급(7.25달러) 대비 두 배 넘는 급여를 받아도 벌 수 없는 돈이다. 퍼주기식 실업수당이 근로 의욕을 꺾는다는 비판이 쇄도하는 이유다.

미국 내 공식 실업자는 현재 981만 명이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각종 수당을 타는 사람은 1686만 명에 달한다. 특히 코로나 추가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은 728만 명이라는 게 노동부 통계다. 지난 3월 1조9000억달러 규모의 부양책이 시행되면서 추가 실업수당은 오는 9월 6일까지 계속 지급된다.
미국의 4월 비농업 부문 채용 규모는 최대 210만 명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으나 실제로는 26만6000명 증가에 그쳤다. 미 노동부 및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제공
미국의 4월 비농업 부문 채용 규모는 최대 210만 명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으나 실제로는 26만6000명 증가에 그쳤다. 미 노동부 및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제공
기업들은 절박하다. 미 최대 스테이크 체인점인 텍사스 로드하우스의 제리 모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말 웨비나에 참석한 자리에서 “채용 공고를 내면 이력서가 쏟아지지만 실제 면접장에 나오는 사람은 놀랄만큼 적다”며 “인력 수급 문제가 기업들의 최대 위협”이라고 토로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고 구직 시늉만 낼 뿐 실제 일할 의사가 있는 실직자는 그만큼 적다는 얘기다.

패스트푸드인 맥도날드 가맹점협회도 “연방정부의 추가 실업수당 때문에 신규 채용이 매우 어렵다”는 내용의 서한을 전국 회원들에게 보냈다. 협회는 “사람을 더 뽑으려면 임금을 높여야 하는데 결국 메뉴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정부 정책이 물가 상승을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해석됐다.

“관대한 실업수당이 구직 활동을 막는다는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보여온 조 바이든 대통령도 부작용을 경계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10일 브리핑에서 “실업자가 적합한 일자리를 제안받으면 수용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혜택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육 문제로 당장 일할 수 없는 경우 등을 제외하면 기회가 생겼을 때 취업해야 한다는 의미다.

"놀면 더 받는데 누가 일하나"…美 '퍼주기 복지'의 역설 [특파원 칼럼]
한국에서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무상 지원’ 얘기가 많이 나온다. 어떤 정책이든 근로 의욕을 꺾을 정도면 부작용이 훨씬 크다. 미 실업수당 정책이 과유불급(過猶不及) 교훈을 주고 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