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기업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동료는 없습니다.” 올해 와세다대 상학부를 졸업하고 석사과정에 입학한 유학생 공모씨(27)가 전한 일본 대학가 풍경이다. 일본에서 취업을 걱정하는 대학생은 사라진 지 오래다.

23% vs 0%… 韓·日 일자리 격차 제조업이 갈랐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올해 일본의 대졸자 취업률은 98%다. 취직 의사가 있는 대졸자 100명 중 98명이 취업했다는 얘기다. 체감실업률은 사실상 ‘0%’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한국 청년층 체감실업률(확장실업률·23.4%)과 비교가 안 된다.

일본이 청년고용을 걱정하지 않게 된 것은 201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경제 활성화 정책인 아베노믹스를 본격 추진한 뒤부터다. 투자 확대책 등에 힘입어 실적이 좋아진 기업들이 채용을 늘린 데다 급속한 고령화로 퇴직자가 증가한 것도 청년층 신규 채용이 많아진 요인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취업 경쟁’이 아니라 기업들 사이에 ‘채용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정반대다. 치솟은 청년실업률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올해 3월 기준 11.6%로 일본(4.5%)의 두 배를 웃돈다.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취업준비생과 구직단념자를 포함한 체감실업률은 20%를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다.

한국과 일본의 청년 고용 형편이 엇갈린 요인으로는 제조업 일자리 증감 여부가 우선 꼽힌다. 일본은 고령화가 더 빨리 진행돼 퇴직자가 많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제조업 일자리가 유지되면서 고용 안정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지난해 일본 제조업 고용자 수는 1006만 명으로 7년 만에 1000만 명을 웃돌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 따르면 도요타 파나소닉 등 주요 대기업은 지난해 대졸 채용 인원을 10% 가까이 확대했다. 8년 연속 채용을 늘린 것이다. 2000년 대형마트 규제를 풀어 서비스업을 키운 덕에 서비스업 고용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한국의 제조업 취업자는 2015년 460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다. 지난해 456만 명 수준으로 줄었고 올 4월엔 447만 명으로 감소했다. 도·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 등 주요 서비스업종도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성장하는 등 제조업 부진의 충격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

日 대졸자 취업률 98%…기업들, 대학 3학년 '입도선매'

일본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한결같이 대졸자 채용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과거에는 대학 4학년생을 대상으로 채용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최근에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앞세워 3학년생을 입도선매하려는 분위기다. 인재를 미리 확보하지 않으면 다른 회사에 뺏길 우려가 커서다. 지난 19~20일 도쿄 후타코타마가와 라쿠텐 본사에서 열린 ‘2020년 졸업예정자’ 대상 인턴십 프로그램 설명회에도 미쓰코시이세탄, 노무라종합연구소, 다이닛폰인쇄, 다케다약품공업, 니토리 등 35개 기업이 참여했다.

대학 등에서 기업의 채용 홍보가 허용되는 3월부터 6월 초까지 일본 전역에서 인재를 찾아나선 기업들의 합동 설명회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설명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기업 부스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자기소개 등을 사전에 등록한 학생에게 여러 기업 인사담당자가 돌아가며 방문하는 ‘역구인형(逆求人型)’ 상담도 늘고 있다.

일본에선 여러 직장에 복수 합격한 뒤 골라서 취업하는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기업이 학생이 아니라 부모들에게 직접 연락해 입사를 적극 독려하는 ‘오야가쿠(親確)’ 현상도 생겨났다. 취업 관련 업체 네오캐리어가 31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41.3%가 ‘오야가쿠’를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 인재의 몸값이 껑충 뛰면서 생긴 현상이다.

일본과 한국의 청년고용 격차가 벌어진 뒤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청년층의 일본 기업 취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일본 취업 지원 민관협의회’와 ‘일본 기업 인사담당자 초청 설명회’를 잇달아 열며 청년들의 일본 취업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한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청년들도 일본으로 몰리고 있다. 일본 내 한국인 근로자 수는 2011년 3만619명에서 지난해 5만5926명으로 82.7%나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