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사업 대부분을 자국 기업에 몰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그동안 일대일로사업에 대해 ‘인류 공동의 미래를 위한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공언해왔다. 중국 기업들의 관련 사업 독식은 일대일로사업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중국 '일대일로'는 빛좋은 개살구… 중국 기업이 일감 90% 가져갔다
◆자국 기업에 일감 몰아주기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자금을 지원해 일대일로 관련 34개국에서 진행 중인 교통 인프라 사업의 89%를 중국 기업이 수주했다고 25일 보도했다. 사업이 진행되는 현지 국가와 제3국 기업이 계약을 따낸 것은 11%에 그쳤다. 이는 미국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조사 결과다.

이에 비해 다자간은행이 자금을 댄 인프라 사업은 여러 국가 기업이 골고루 수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CSIS가 2006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178개 인프라 사업을 조사한 결과, 현지 시공사가 사업을 따낸 비율이 41%로 가장 높았다. 나머지는 제3국(30%)과 중국 기업(29%)에 고루 돌아갔다. 조너선 힐먼 CSIS 리커넥팅아시아프로젝트 이사는 “사업계약을 공정 경쟁에 부치는 것이 중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 이익”이라며 “일대일로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더 분명한 기회가 없다면 많은 국가가 왜 일대일로사업에 참여했는지를 자문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대일로 수사와 현실의 괴리

이번 조사 결과는 일대일로사업이 내세우는 수사(修辭)와 이면 현실 간의 간극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파엘로 판투치 영국 왕립국방연구소 이사는 “중국이 일대일로사업 계약을 외국 기업에 개방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중국 정부를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 관계자들의 수사만 보면 중국이 다른 나라에 애정과 돈, 사업계약을 나눠줄 것 같지만 사실은 저개발 국가의 인프라 부족분을 메울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힐먼 이사는 “겉으론 일대일로가 모두에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중국 중심주의가 최우선 관심사”라고 지적했다.

일대일로는 시 주석의 대표적인 대외전략이다. 그는 지난해 열린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일대일로사업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무역과 투자 자유화를 증진하고 경제자유화의 혜택을 모두가 공유하도록 이를 더 개방적이고 포괄적이며 균형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대일로사업과 관련해 ‘공동운명체론’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세계 각국이 중국의 부상을 ‘위협’이 아니라 ‘상호번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수사 뒤엔 중국의 실리주의가 깔려 있다. 일대일로는 국내총생산(GDP) 13조달러, 인구 32억 명을 포괄하는 유라시아 60여 개국이 관련된 대규모 사업이다. 제임스 빌라푸에르트 ADB 이코노미스트는 “일대일로는 중국의 해외 직접투자를 확대하고 주변국의 인프라 사업을 개발해 (중국 주도로) 역내 통합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인도, 견제 강화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실리를 차지하면서 러시아 터키 카자흐스탄 등 주변국도 인프라 투자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일본 인도 등 경쟁국의 견제도 가시화되고 있다.

인도는 26일 헌법 발효를 기념하는 국경일인 공화국의날 행사에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 정상을 초청했다. 지금까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등 주요 인사가 초청된 적은 있지만 여러 나라 정상이 한꺼번에 온 적은 없었다. FT는 “역내 영향력을 키우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 아세안 국가와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평가했다.

인도와 아세안 국가 간 무역 규모는 580억달러(2015년 기준)인 데 비해 중국과 아세안 간 무역 규모는 2020년 1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과의 격차는 크지만 인도도 인프라 투자에 적극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본 역시 인도 미국 호주와 군사 및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도하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인도는 물론 아세안, 아프리카에 공적개발원조(ODA)를 확대해 외교관계를 강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