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요인도 구제금융에 반영될 듯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의 금융 시스템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수혈에 의존하는 가사 상태에 빠지자 그리스에 의존한 키프로스의 금융 체제도 마비 상태에 빠졌다.

키프로스가 25일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키프로스 금융과 경제가 그리스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키프로스는 26일 현재 국채 수익률(금리)이 10년물 기준으로 16%를 넘어 정상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여기에다 이달말까지 양대 은행은 자본 확충을 위해 약 18억 유로의 부족분을 메워야 할 처지다.

그리스계 주민이 70%를 차지하는 키프로스는 양대 은행을 비롯한 금융 체제가 그리스에 크게 의존하는 상태인데다 5년째 내리 침체에 빠진 그리스 경제 탓에 그리스에서 온 관광객이 급감해 리조트와 호텔 등은 폐업이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다 유로존에서 몰타와 에스토니아 다음으로 작은 경제 규모로 그리스에 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키프로스 야당이 구제금융 신청 시기를 놓쳤다고 비난하지만, 키프로스 정부는 좀 더 좋은 조건의 구제금융을 받겠다며 러시아에 차관을 요청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며 그간 유럽중앙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압박했다.

키프로스가 올 하반기에 유럽연합(EU) 의장국 역할을 수행하는 점도 구제금융 신청을 압박한 요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리스가 정부 구성에 성공하면서 급한 불을 끈 EU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키프로스의 의장국 임기가 시작하는 7월 이전에 문제를 적시하고 해법을 제시해야 할 상황이다.

EU의 구제금융이 이뤄지면 키프로스는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에 이어 5번째로 EU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가 된다.

키프로스에 대한 구제금융 규모는 키프로스 경제(170억 유로 규모)의 절반을 넘는 최대 100억 유로에 이를 것으로 EU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이들은 키프로스 재정에 약 60억 유로, 금융 부문에 20억 유로가 각각 투입될 것으로 대략 분석했지만, 전체 규모는 상황에 따라 더 늘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키프로스는 EU 구제금융을 받더라도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차관을 받으려는 시도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터키와 이스라엘에 인접한 지중해의 섬나라인 키프로스는 EU 국가 중 유일하게 공산당이 집권했다.

드미트리스 크리스토피아스 대통령은 러시아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러시아는 작년에 25억 유로 차관을 제공했다.

키프로스와 러시아의 유대 관계는 196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련은 키프로스 빨치산 주도로 이뤄진 독립과정에 개입했으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속한 터키가 북키프로스를 침공하자 소련은 대결을 피해 물러났다.

키프로스는 러시아의 차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재벌과 부호들에게 '조세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EU로서는 키프로스의 구제금융 신청과 조건을 결정할 때 경제 측면 아니라 키프로스의 지정학적 요인도 감안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다페스트연합뉴스) 양태삼 특파원 tsy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