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언어의 토양이 비옥해지는 시기이다. 2차세계 대전은 `전투신경증(shellshock)', `개인참호(foxhole)', `전격작전(blitzkrieg)' 같은 새 단어들을 탄생시켰으며 베트남 전쟁에서는 `강경파(hawks) `온건파(doves)' 등 단어의 새로운 의미가 형성됐다. 걸프전에서는 `모든 전쟁의 어머니' 같은 이질적 어휘가 등장했다.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1일 새로운 `전쟁어'들과 이를 둘러싼 개념의 변화를 추적했다. `적극 지지국들의 동맹(coalition of the willing)'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를 제거하기 위해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작전을 벌이는 이번 전쟁에는 미.영군 부대와 함께 기자들이 `종군(embedded)'하고 있다. 그러나 미 국방부가 `이라크 자유 전쟁(Operation Iraqi Freedom)'으로 명명한 이번 전쟁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단어는 `신속(quick)'이다. 부시정부 안팎의 강경파들은 입만 열면 이번 전쟁이 `비교적 신속히(relatively quickly)' 끝날 것이라고 장담해 왔으며 딕 체니 부통령은 이같은 표현의 의미가 '몇 달이 아닌 몇 주(weeks rather than months)'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일반 미국인들은 이같은 표현의 뉘앙스를 재빨리 알아차리지 못 한다. 이들에게 `신속히'란 `내일까지'란 뜻이다. 전쟁의 장기화 전망이 짙어지면서 행정부 내에선 또 다시 표현방식을 두고 씨름이 벌어지고 있다. 국방부의 리처드 펄 고문은 최근 한 텔레비전 방송에서 "이번 전쟁은 역사적 기준으로 볼 때 신속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인들이 전쟁상황을 리얼타임으로 지켜보고 있는 현실에서 이미지에 따라 붙는 언어들은 더욱 더 중요성을 지닌다. 언어는 개념을 형성하고 나아가 여론을 조성해 선거 등을 통해 정치적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주 맥딜 공군기지에서 전쟁이 "예정보다 빨리(ahead of schedule)"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뻔 했다. 애리 플라이셔 대변인은 사전 브리핑에서부시가 이같은 표현을 사용할 것이라고 알려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부시는 마지막순간 신중을 기하기로 했는지 이같은 표현을 바꾸었다. 이라크 침공을 `해방(liberation)'으로, 전쟁의 목적을 `평화'라고 설정한 미국정부의 공식 표현도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폴 월포위츠 국방차관과 케네스 애들먼 국방정책위원 등 강경파가 즐겨 쓰는 `해방'이란 단어는 대중을 현혹시킬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 언어정보연구센터의 제프리 넌버그 선임연구원은 그러나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언어사용은 국민을 속이려기보다는 의도적인 자기 기만이나 자기 현혹을 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해방'이란 단어는 탱크에 탄 미군 병사들이 노르망디의 농촌을 지나가면서 예쁜 시골 처녀들을 안아올려 키스하던 광경을 떠올리게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이라크인들은 침울하고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길가에 늘어서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해방'이란 단어는 이처럼 부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미국은 이번 공격을 `전쟁'으로 부르는 것 역시 시큰둥해 하고 있다. 정치수사학자인 제인 엘름스-크레이홀은 "`전쟁'이란 단어는 도금된 것과도 같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이란 단어를 쓰면서 위로와 조직감을 찾으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 단어가 현실감을 준다. 그들은 전쟁에 대비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국방부에서는 이라크의 `페다인' 민병대와 이들의 게릴라식 공격방식을 놓고 광범위한 공개토론이 벌어졌다. 국방부는 비정규군인 이들로부터 고상한 목표를 박탈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라크에 있는 미군들에게는 `대의를 위한 순교자'란 뜻을 가진 `페다인'이란 용어 사용 자체가 금지됐다. 그 대신 미군은 이들을 `준군사 전투원(paramilitary fighters)' 또는 PMF로 부르라는 지시를 받았다. 빅토리아 클라크 국방부 대변인은 이들을 그저 `악당(thug)'으로 부르는 편을 좋아한다. 전쟁이 2주째 접어들자 이들의 이름은 `준군사 암살대(paramilitary death squads)'로 바뀌었다. 한편 이번 전쟁을 `식은 죽 먹기(cakewalk)'로 예고했던 애들먼은 경솔했던 자신의 발언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