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로 떠들썩했던 베이징이 평온을 되찾고 있다. 2천여명의 대표들은 고향으로 돌아갔고,당 대회 관련 현수막도 하나 둘 철거되고 있다. 언론은 결산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잔치가 끝난 것이다. 이번 대회는 중공 당사(黨史)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게 됐다. 지난 1949년 건국 이후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다는 점에서 그렇다. 76년 9월 최고 권력자 마오쩌둥의 사망과 함께 권부에서는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덩샤오핑을 지지하는 예진잉 장군과 장칭을 우두머리로 한 4인방(四人幇) 세력간 군사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예 장군은 '성공한 쿠데타'로 4인방을 체포,덩샤오핑에게 최고 권력으로 가는 길을 열어줬다. 덩샤오핑에서 장쩌민으로의 정권교체 역시 순조롭지 못했다. 순리대로라면 덩샤오핑이 키워온 자오쯔양 총서기가 권력을 잡았어야 했다. 자오쯔양은 그러나 지난 89년 6월 톈안먼사태 때 덩의 역린을 건드렸고,결국 '톈안먼 탱크'에 밀려나야 했다. 그리고 권력은 전혀 엉뚱한 인물인 장쩌민 현 국가주석에게 돌아갔다.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의 정권승계 과정에서는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고,의외의 인물이 튀어 나오지도 않았다. 최고 권력은 지난 10여년 동안 착실히 지도자 수업을 한 후진타오에게 넘어갔다. 장 주석이 군권(軍權)을 넘겨주지 않았다고는 하지만,이 역시 '4세대의 전면 등장'이라는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계파와 계파가 권력암투를 벌였을 것이다. 지난 여름 휴양지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는 책상을 뒤엎고,협상장을 뛰쳐나가는 충돌이 벌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일단 후임자가 결정되자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단합을 과시하며 밀실에서 나왔다. 회의 마지막 날인 15일에는 새 지도부가 3백여명의 내외신 기자들 앞에 나타나 손을 잡고 단합을 과시하기도 했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중국이 또 다시 '돌격 앞으로'를 외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한달 후면 새 지도자를 뽑는다. 우리 대선도 국민 총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