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에 실린 응급 환자가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가 반복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응급 환자 이송에 1시간 넘게 걸린 사례가 1만6939건이었다. 2019년 4332건에서 3년 만에 네 배로 늘었다. 응급실 뺑뺑이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라 불리는 필수 의료과목 붕괴 현상의 한 단면이다. 일부에선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소위 인기과로 몰리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의사들에게 돈을 밝힌다고 비난만 할 수 있을까. 의료 분야도 돈이 오고 가는 경제 원리가 작동하는 시장인데 말이다.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문제는 '의료시장 가격상한제'

감기 진료비가 10만원이라면?

필수 의료 붕괴의 배경을 살펴보려면 의료수가 얘기부터 해야 한다. 의료수가는 의사(병원)가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받는 돈이다. 한마디로 의료 서비스의 가격이다.

의료수가는 일반적인 재화·서비스 가격과 달리 정부가 정한다. 항생제 주사는 1만원, 소독약 처방은 5000원 하는 식으로 정해진다. 의료수가 제도는 일종의 가격상한제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환자를 잘 보는 의사도, 명성이 자자한 병원도 의료수가를 초과하는 돈을 받을 수 없다.

정부가 의료수가를 통제하는 근거는 간단하다. 의료 서비스는 전 국민에게 필요할 뿐만 아니라 판매자(의사)와 구매자(환자) 간 정보 비대칭이 크다는 것이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요즘 환절기라 감기 환자가 몰려서 진료비가 올랐다”며 10만원을 내라고 한다면 어떨까.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의료수가로 감기 진료비를 묶어 놓는다.

환자가 많으면 병원은 망한다

그러나 의료시장이라고 가격상한제 부작용의 예외는 아니다. 가격 상한이 시장 균형 가격보다 낮으면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줄어든다. 즉 의료수가가 너무 낮으면 의료 서비스 공급(의사와 병원)이 수요를 못 따라가 환자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

의료 서비스의 시장 균형 가격을 추정하기는 어렵다. 여러 연구와 통계를 보면 의료수가의 원가 보전율은 평균 50~80% 수준이다. 필수 의료의 원가 보전율은 더 낮다고 의료계는 주장한다. 소아청소년과는 원가 보전율이 30%대라는 통계도 있다.

그러니 필수 의료는 환자를 보면 볼수록 적자가 난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연간 적자가 600억~800억원에 이른다. 국립암센터와 건보공단 일산병원은 응급실 운영에서만 매년 20억원이 넘는 적자가 난다.

이러니 병원들은 적자투성이 ‘내외산소’ 과목을 구조조정하고 응급실 문을 닫고 있다. 의대생은 필수 의료 과목을 외면하고 성형 등 인기과로 몰린다. 인기과로 가면 의료수가가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로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고, 업무 강도는 낮기 때문이다. 의료 사고로 처벌받을 위험이 적다는 장점도 있다. 지난해 필수 의료 전공의 충원율은 78.5%에 그쳤다. 새 인력이 충원되지 않으니 기존 인력은 더욱 격무에 시달린다. 대도시 중심가 신축 빌딩은 피부과 성형외과로 가득 차고, 응급 환자를 실은 구급차는 갈 곳이 없어 길을 헤매는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다.

싸다고 좋은 건 아니다

균형 가격보다 낮은 가격 상한은 초과 수요를 만들어낸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응급의료기관을 방문한 환자 중 ‘경증’으로 분류된 환자가 53.4%였다. 의료 현장에서는 ‘감기 환자를 보는 사이 심정지 환자가 죽어 간다’는 말이 나온다. 구급차 이용을 유료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필수 의료 공백의 대책으로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이 종종 거론된다. 그러나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늘어난 의사들이 필수 의료로 갈지는 미지수다. 의사가 많아져 인기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필수 의료를 지원하는 의사가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나 기대할 수 있는 결과다.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의료 서비스를 시장 원리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또 의료수가 인상은 건보 재정 악화와 국민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의료수가가 문제의 전부도 아니다. 그러나 시장 원리를 도외시한 채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필수 의료 붕괴의 해결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