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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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부터 휘발유와 경유 등에 붙는 세금(유류세)이 더 내려갔습니다. 휘발유는 (부가가치세 10% 포함) L당 656원에서 573원으로, 경유는 465원에서 407원으로 줄어든 식입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자 정부가 내린 특단의 조치입니다. 하지만 기름값이 내린 주유소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휘발유와 경유는 공장에서 반출되는 과정에서 세금이 먼저 붙어서 시판됩니다. 유통 시차를 고려하면 인하 효과가 즉각 반영되기는 어렵습니다.

국내 정유업체 빅4(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의 직영 주유소들은 5월 1일 0시부터 일제히 유류세 인하분을 반영해 기름값을 내렸습니다. 따가운 여론을 반영해 손해를 감수한 조치입니다. 하지만 자영 주유소들은 이 같은 조치를 따를 의무가 없습니다. 개인 사업자에게 “기존에 비싸게 사온 기름이지만 이제부터는 싸게 팔라”고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지난 1일 서울시내 한 정유사의 직영주유소(왼쪽)와 일반 주유소 기름값. 연합뉴스
지난 1일 서울시내 한 정유사의 직영주유소(왼쪽)와 일반 주유소 기름값. 연합뉴스
즉시 기름값을 내린 정유 4사의 직영 주유소는 전국에 760여개이지만 전체 주유소 비율로 따지면 7%도 되지 않습니다. 기름값을 내린 주유소를 찾기가 어려운 배경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3000개의 주유소 중 160여개 만을 직영으로 운영합니다. GS칼텍스는 2200개 중 240여개, 현대오일뱅크는 2400여개 중 350개 만이 직영 주유소입니다.

‘그래도 기름값 올릴 때는 빨리 올리더니, 내릴 때는 왜이렇게 천천히 내려가느냐’는 불만이 적지 않게 들립니다. 이 땐 소비패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기름 가격이 올라갈 때는 소비자들이 미리 주유를 해 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쌀 때 한 방울이라도 더 넣어야죠. 그러면 기존에 싼 값에 사놨던 기름 재고가 금방 떨어지게 되니 상대적으로 비싼 물량이 더 빨리 들어오게 됩니다.

반대로 기름 가격이 내려갈 때는 소비자들이 주유를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어차피 내일이면 더 싸게 넣을 수 있을테니 기다립니다. 그러다보니 재고는 눌리게 됩니다. 기존 기름이 팔려야 인하분이 반영된 더 싼 물량이 들어오는 건데 상대적으로 눌려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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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정유사가 정부의 감세 조치 덕분에 거대한 이익을 올렸다고 말합니다. 물론 어떤 기준에서 어떤 방법으로 분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는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유가는 역대급으로 오른 상태이고, 정유사들의 정제마진 역시 20달러에 가까운 역대급 숫자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유사들의 1분기 실적도 역대 최대를 기록 중입니다.

하지만 재고평가 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유가가 내려가면 손실로 돌변할 변수입니다. 원유에 붙는 프리미엄(OSP)도 고려해야 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세계 2위 산유국인 러시아 원유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사우디산 원유로 수요가 몰렸고, OSP는 3월 2.8달러에서 4월 4.95달러, 5월 9.35달러로 급등했습니다. (정제마진에서 OSP는 빼고 봐야합니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일각에서 거론하는 ‘거대한 이익’과는 거리감이 상당하는 게 업계 중론입니다.
주유소 사장님들 돈 번다고 하면 다들 지금 뛰쳐 나올 상황이에요.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파는데, 밀가루 가격 올라가면 분식집이 떼돈 버나요?

기본적으로 국내 석유시장은 공급초과 시장이기 때문에 국내 정유사들은 내수로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가 아니에요. 그래서 일찍부터 고도화시설에 투자하고 수출하는 거죠. 기름값, 통신비는 항상 정치권하고 엮일때마다 나오는 문제인데 답답하네요.

-국내 모 정유사 임원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