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인 미만 사업장 주 52시간제 계도기간 종료
잔업수당 깎이는 中企 근로자
"기존 월급 기준 퇴직금 중간정산을"

중기 사장들, 인력난에 빚 내서 퇴직금 지급
"근로소득 줄고 사업주는 비용 증가, 누가 바라나"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 계도기간 종료가 한 주 앞으로 다가오자 퇴직금 중간정산을 요구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주 52시간제 본격 시행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평균임금을 기준을 산정하는 퇴직금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인천의 한 주물공장에서 근로자가 쇳물을 받아내고 있다.  한경DB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 계도기간 종료가 한 주 앞으로 다가오자 퇴직금 중간정산을 요구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주 52시간제 본격 시행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평균임금을 기준을 산정하는 퇴직금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인천의 한 주물공장에서 근로자가 쇳물을 받아내고 있다. 한경DB

경남 창원에서 주물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최근 직원들의 퇴직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급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직원 수십 명이 한꺼번에 퇴직금 중간정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10~15년 차 직원들이 지금까지 퇴직금을 내놓지 않으면 회사를 떠나겠다고 통보해 난처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27일 중기업계에 따르면 이달 300인 미만(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제 계도 기간 종료를 앞두고 퇴직금 중간정산에 나서는 근로자가 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면서 임금 수준이 높을 때 미리 퇴직금을 정산하기 위해서다.

퇴직금은 직전 3개월 동안 지급된 기본급, 연장·야간근로수당 등을 합산해 산정한 평균임금(30일분)에 근속연수를 곱해 계산한다. 주 52시간제 적용 등 근로시간 단축으로 퇴직금이 감소할 경우 근로자는 관련 시행령에 따라 퇴직금 중간정산을 사업주에게 요구할 수 있다. 퇴직금이 감소할 수 있음을 근로자에게 미리 알리지 않거나 산정기준을 바꾸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주는 5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내용이 담긴 시행령을 2018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시행과 동시에 적용했다.

중소기업 근로자는 퇴직금 중간정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다. 기본급이 비교적 작고 총 급여에서 연장근로수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임금체계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중소기업 임금 감소율은 12.5%로 대기업(7.9%)에 비해 감소 폭이 크다. 급여 감소로 인해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 근로자가 체감하는 퇴직금 감소 폭도 더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남 밀양의 금속열처리업체 박 모 사장은 “주·야간 교대로 주 72시간 근무하던 게 주 48시간으로 바뀌면서 직원들의 월급이 반 토막 났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이상 근속한 직원들은 퇴직금 중간정산을 안 해주면 퇴사해서라도 받아가겠다고 으름장을 놨다”며 “일할 사람을 새로 구하기가 힘들어서 빚을 내 간신히 붙잡았다“고 밝혔다.

정부는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지난해 100인~299인 사업장과 50인~99인 사업장 근로자의 퇴직연금 가입률은 각각 63.8%, 58.7%에 그쳤다.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의 가입률은 12.1~54.6% 수준에 불과했다.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근로자의 퇴직연금 가입률도 낮았다.

부산의 한 조선기자재업체 대표는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대부분 중소기업이 퇴직금, 신규 채용 등 주 52시간제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며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총체적인 난국에 빠질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연구원이 지난 9월 대형조선사 협력업체 67곳에 주 52시간제 도입 후 예상되는 혼란을 물은 결과 ‘임금보전 관련 문제에 따른 노사갈등 증가(39.6%)’를 꼽은 업체가 가장 많았다.

퇴직금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앞으로 심화할 전망이다. 가동률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인력의 근로시간이 단축된 만큼 신규 인력을 채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 근로자 신규입국도 지연되면서 비숙련 근로자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4월 이후 외국인 근로자 신규입국 일정이 지연된 탓에 생산 차질이 발생한 업체는 지난 9월 기준 64.1%에 달했다.

주52시간제 시행이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중소기업들의 반발은 이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 사내 협력사 협의회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을 유예해달라”고 호소했다. 협의회 측은 “올 연말 50∼299인 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계도 기간이 종료되면, 협력사 경영난이 심화하고 인력이 유출돼 산업 기반이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설업계도 마찬가지다. 정달홍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이사장(성보엔지니어링 대표)는 “대부분 공사현장이 주 68시간 근무 중인데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공기를 맞추기 위해 인력 30%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근로소득을 줄이고 사업주의 부담을 늘리는 주 52시간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제도다”고 하소연했다.

박평재 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 이사장(경일금속 대표)도 “코로나19 이후 경기가 회복됐을 때 경쟁력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고 전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올 한해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중소기업들의 체력이 많이 약해진 상황”이라며 ”사업주에 대한 고용 지원 확대,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감소되는 근로자의 임금감소분 보전 등 보완입법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력 활용의 유연성이 매우 낮은 국내 상황에서 연장근로는 경기상황에 따라 산출량을 조절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만큼 근로시간의 탄력운용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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