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 무역센터빌딩 사무실에서 만난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경제가 너무 걱정된다”는 말부터 꺼냈다. 초대 금융위원장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낸 경험도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손을 내저었다. “이번 위기는 전염병 위기입니다. 그래서 전대미문의 위기며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 이사장은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면 모든 국민이 단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행정수도 이전론을 띄우는 것을 보니 답답합니다. 이렇게 국론을 분열시켜 어떻게 위기를 이겨내겠습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서도 “조준사격이 필요한 부문인데 산탄총을 쏴대는 모양새”라며 “그러니 애꿎은 서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위기가 6개월째입니다.

“하반기 경제 전망이 매우 어둡습니다. 경제 회복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달려 있는데 미국뿐 아니라 주요국에서 확산세가 그대로입니다. 세계경제가 불투명하니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도 강한 반등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자산시장이 올랐지만 경제가 회복됐다고 할 수는 없죠. 영양제, 진통제를 맞아 약간 나아진 것이지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닙니다.”

▷추가 부양책을 써야 하겠습니까.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겸즉진 인위고(謙則進 忍爲高)’라는 글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겸손한 자가 나아가고 인내하는 자가 높임을 받는다’는 뜻의 공자 말씀으로 항상 새기려 노력한다고 했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겸즉진 인위고(謙則進 忍爲高)’라는 글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겸손한 자가 나아가고 인내하는 자가 높임을 받는다’는 뜻의 공자 말씀으로 항상 새기려 노력한다고 했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아 한국을 포함한 각국이 전례없는 재정·통화 정책을 꺼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초동대응이었죠. 하지만 이 같은 완화적 정책을 지속적으로 쓰긴 어렵습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마저 유동성을 과도하게 푼 영향으로 달러 약세라는 문제가 오지 않았습니까. 한국도 적잖은 유동성을 수혈했지만 실물경제 곳곳으로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뚜렷합니다. 추가 부양책을 고민하기에 앞서 돈맥경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마중물’을 무턱대고 붓는다고 실물경제가 제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유동성이 생산적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기업활동을 옥죄는 정책부터 완화해야 합니다.”

▷기업 투자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빠른 속도로 인상된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로제 규제 등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부터 고민하고 노동개혁에도 적극 나서야 합니다. 현대자동차의 실적과 기업가치가 최근 몇 년 동안 역주행한 것은 강성노조가 목소리를 높인 영향도 큽니다. 금융산업 경쟁력은 제조업보다 훨씬 떨어집니다. 강력한 규제 탓입니다. 금융산업은 빠르게 변하는데 정부는 도그마처럼 금산분리 원칙 등에 매달려 있습니다.”

▷홍콩의 금융허브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데 한국으로선 기회일까요.

“노무현 정부가 역대 정권 가운데 처음으로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 비전을 ‘금융중심지’ 전략으로 이름을 바꿔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는 금융허브라는 비전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홍콩보안법 통과 직후 홍콩을 대체할 금융허브를 세우기 위해 싱가포르와 도쿄가 뛰고 있지만 한국은 미동도 없습니다.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선 몇 가지가 갖춰져야 합니다. 첫 번째가 영어입니다. 조기교육해야죠. 다음으론 규제와 노동 문제입니다. 한국은행도 노조가 있는데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노조가 있는 나라가 몇 곳이나 있습니까. 아직 멀었죠.”

▷여당이 들고나온 행정수도 이전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한국이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조기에 극복한 것은 국력을 결집한 덕분입니다.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이 대표적입니다. 코로나19 위기 과정에서도 국론을 결집해야 하지만 외려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입니다. 행정수도·서울대·공공기관 이전을 놓고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국민이 이렇게 하라고 여권에 의석을 몰아준 것은 아닐 겁니다. 국정추진 동력이 떨어지는 정권 후반기에 경제위기를 극복할 힘을 실어주기 위해 여권에 표를 준 것입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떻게 봅니까.

“경제이론상 가격 결정의 출발점은 수요·공급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상식적으로 공급이 부족한지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정부는 22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 동안 공급 대책은 빼놓았습니다. 부동산 규제도 필요한 대책만 꺼내는 방식으로 ‘조준 사격’해야 하는데 산탄총을 꺼내 쏴대는 방향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산탄총 정책’ 결과로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평생 저축해서 어렵게 집을 장만하려는 서민 등 선의의 피해자들이 산탄총 대책의 탄알을 맞고 있습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금융과 부동산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요.

“해외 토픽에 나올 얘기지요. 미국에서도 대부분 모기지론 받아서 집을 장만합니다. 어떻게 금융과 부동산을 분리(금부분리)한다는 것인가요. 국민의 내 집 마련 꿈을 뒷받침하는 것이 금융의 역할입니다. 지금 절실한 것은 금부분리, 금산분리가 아니라 금정분리입니다. 금융과 정치권의 분리입니다. 민간금융이 정치권의 간섭을 받으니 금융 후진국 얘기를 듣는 것입니다. 또 여러 금융사고를 보면 심심찮게 정치권과 연결돼 있지 않습니까.”

▷향후 기업 구조조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장은 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아시아나항공도 채권단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산업은행의 국유화 얘기도 나오지만 국유화는 능사가 아닙니다. 서둘러 역량 있는 민간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미국 정부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GM 지분을 사들였지만 오래지 않아 팔았습니다. ‘큰 정부’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 전광우 이사장은…

경제·경영학자 출신으로 공직자,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두루 거쳤다.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우리금융그룹 총괄부회장,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금융위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2008~2009년 초대 금융위원장을 맡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에 전이되는 것을 막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최장수 국민연금 이사장 기록도 갖고 있다.

△1949년 서울 출생
△서울 사대부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인디애나대 경제학 석사, 동대학원 경영학 석·박사
△1982년 미시간주립대 경영대 교수
△1986~1998년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2000년 국제금융센터 소장
△2001~2004년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2004~2009년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2008~2009년 금융위원회 위원장
△2009∼2013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현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정리=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