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감소·구조조정 여파 대응…소득·법인세 등 세율조정은 없어
전문가 "국가부채 증가하는데 세수 증대는 미미" 지적


"신산업 투자와 일자리는 늘리고, 서민·중산층 부담은 줄이겠습니다"
정부가 28일 내놓은 '2016년 세법개정안'의 초점은 이 캐치프레이즈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올해 들어 지속되고 있는 수출부진의 영향으로 투자가 크게 위축된 상태인데다,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일자리 창출 여력이 약화되는데 대응하기 위해 경제활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향으로 세제 개편안이 마련됐다.

앞서 역대 최저 수준으로 기준금리가 인하됐고, 최근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편성에 이어 세제까지 경기부양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악화하는 재정 건전성을 고려할 때 이번 세법개정안이 세수 확충 측면에서는 미흡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

◇ 신산업 투자·일자리 확충에 혜택 집중…"세율체계 개편은 적기 아냐"

지난 26일 한국은행 발표를 보면 지난 2분기 우리 경제는 0.7% 성장에 그쳤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인 0.5%보다는 0.2%포인트 높아졌지만, 작년 4분기부터 3분기 연속으로 0%대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저성장 추세가 만성화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 생산과 내수 지표는 완만하게 개선되고 있지만, 수출 부진의 영향이 투자 위축으로 파급되면서 민간 부문의 활력이 미흡하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경기둔화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으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경제활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먼저 기재부는 미래 성장동력 확충을 위해 신성장산업과 서비스업에 대한 세제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미래형 자동차와 지능정보, 차세대 소프트웨어(SW) 및 보안 등 11대 신산업 기술을 중심으로 연구기술(R&D) 세액공제 제도를 전면 개편하고, 공제율도 30%까지 인상한다.

신성장산업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한 시설투자시 투자금액의 10%(중견기업 8%·대기업 7%)를 세액공제해주는 제도도 신설한다.

고용 친화적 세제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개선안도 마련됐다.

조선업 등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하면서 대량실업 등 '고용 한파' 가능성이 대두되는데 따라 이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용·투자 등 세제지원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 지원 대상을 거의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고, 고용창출 투자세액공제액을 1인당 500만원씩 인상한다.

세법개정 논의 과정에서 소득세와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3대 세목의 세율조정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경제활성화 노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틀의 변화는 주지 않는 쪽으로 정리됐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세율체계를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경제 여건 감안할 때 지금은 적기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3년 17.9%였던 조세부담률이 올해 18.9%까지 오를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국민 세 부담을 더 늘리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 차관은 "법인세는 (세율 인상의 경우) 현재 추경 등 경제활력 제고 노력에 배치되고, 대기업 실효세율이 오르는 추세라는 점을 감안했다.

또 소득세는 최고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고, 부가세도 저소득층 영향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세율체계 조정은 이번 개정안에 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 민생안정 위해 서민·중소기업 지원 확대

이번 세제 개편안의 또 다른 목표는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 자영업자, 농어민 등에 대한 민생안정이다.

경제 여건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이들 계층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됐다.

올해로 일몰(폐지)될 예정이었던 신용카드 등 소득공제의 적용기한을 2019년 말까지 연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다만 급여 7천만원 이상에는 공제한도가 축소된다.

최영록 기재부 세제실장은 "카드 공제가 소득공제 방식이다 보니 세율이 높은 고연봉자의 혜택이 크다는 점을 고려했다.

적용시한은 연장하되 고소득층의 혜택을 줄이는 방향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일하는 저소득 가구가 지원받는 근로장려금 지급액은 10% 수준 상향 조정된다.

경차 유류세 환급 특례는 올해 말로 적용이 끝날 예정이었지만, 서민 유류비 부담을 완화한다는 차원에서 2018년 말까지 2년 연장된다.

또 학자금 원리금 상환액을 교육비 세액공제 대상에 추가하고, 월세 세액공제율을 2%포인트 인상하는 등 생활 밀착형 지원책들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정부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위한 맞춤형 대책에도 신경을 썼다.

신용카드 등 매출세액공제 우대공제율, 재활용폐자원 등 의제매입세액공제 등의 적용기한을 2년씩 연장한다.

대·중소기업 협력재단 등 출연에 대한 세액공제를 2019년 말까지 연장해 상생협력을 유도한다.

중소기업이 근로자복지증진시설을 취득하면 취득금액에 대해 세액공제해주는 비율을 10%로 올린다.

◇ 전문가 "국가부채 증가하는데…세수 증대효과 미미"

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연간 3천171억원의 세수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고소득자와 대기업 세부담이 연간 7천252억원 가량 늘어난다.

발전용 유연탄 개별소비세율을 상향조정한 효과(매년 약 490억원)에 기업소득이 배당보다 임금증가·투자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손본 영향(190억원) 등이 크다는 분석이다.

반면 서민·중산층과 중소기업은 매년 3천805억원 가량 세부담이 낮아진다.

교육비 세액공제 확대(-110억원), 근로장려세제 확대(-100억원) 등으로 인한 혜택이 이들 계층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GDP 대비 국가채무가 40%에 육박하며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번 세법개정이 세수 확충 측면에서 미흡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전체적으로 보면 이번 세법개정의 세수효과는 연간 3천171억원에 불과해 큰 변화가 없다.

세수효과가 크거나 다수의 납세자에게 큰 영향이 있거나 형평성을 크게 개선하는 내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이번 세제개편을 보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총 증세효과가 가장 적다.

2013년에는 무려 2조4천900억원 증세효과가 있었다"면서 "국가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는데도 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고려를 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각종 비과세·감면을 과감히 정비해 세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과세 감면을 확대하거나 일몰조항을 연장하는 형태로 세금을 감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과거 일몰을 도입했을 때 당시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