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금융사의 부실은 원화부문에만 머물지 않는다.

외화부문 부실은 지난 8월 7개 종금사가 외환당국의 긴급수혈을 받아 부도
위기를 넘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종금사의 외화위기는 물론 기아 등 올들어 대기업의 잇단 부도및 부도유예
협약적용으로 부실여신이 급증한데 따른 대외신인도 추락이 가장 큰 원인
이다.

하지만 위기 대처능력이 상실된 외화 영업구조 역시 종금사의 경영위기를
만들어낸 주된 배경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이견을 달기 어렵다.

국내 종금사가 부도위기에 몰리고 있는 태국의 금융기관에 여신은 해준 돈은
4억7천5백86만8천달러.

특히 태국정부가 영업정지 시킨 58개 파이낸스사에 해준 종금사 여신 가운데
5백38만달러는 사실상 떼이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종금사가 안팎의 부실로 골병들고 있는 것이다.

초우량 대기업 계열의 A종금사는 지난 8월께 한국은행으로부터 밤늦게 긴급
지원을 받은데 이어 최근에는 그룹의 지원사격까지 받고 있다.

그룹 계열사를 통해 은행을 거쳐 이 종금사에 흘러간 외화는 무려 2억달러.

이 종금사의 외화위기는 장기자금이 뒷받침 안된 상황에서 평균 5년이상
자금을 운용해야 하는 리스에 공격적으로 나선 때문으로 보인다.

단기조달자금을 리스하는데 쏟아 부은 것이다.

지난 94년 리스를 시작한 이 회사의 외화리스 실적은 11억달러로 20년간
리스영업을 해온 종금사 수준에 육박한다.

외화자금수급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은 불문가지.

단기조달-장기운용의 기간불일치 구조는 종금사의 관행이 돼 버렸다.

이 구조에서는 자금을 제때 회수하기 힘들다.

종금사가 외화유동성 위기가 닥쳐도 속수무책일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당수 전환종금사들이 오버나잇트론(하루짜리 외화콜)로 빌린 달러로
리스나 3년이상 만기의 외화 유가증권에 투자 해온 것"(대한종금 안병서
이사)이다.

금융기관경영의 ABC인 자산부채종합관리(ALM)시스템은 여전히 남의 나라
이야기로 남아 있는 셈이다.

종금사의 고수익 집착은 투기적인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

환거래에서 두드러진다.

한불종금 유경찬 이사는 "해외에서 한국에는 김소로스 이소로스가 있다는
얘기를 할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 혼났다"고 말했다.

한솔종금과 코오롱이 최근 1백억원대 환차손 사고를 낸 것 역시 1억달러를
한번의 환거래에 쏟아부은 환투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외화조달 능력이 부족한 종금사를 양산한 정부도 종금사 외화위기를
만들어낸 책임을 면키 어렵다.

94년과 96년 두차례에 걸쳐 국제영업을 할수 있는 24개 투금사가 종금사로
전환했다.

6개 종금사가 뛰어다닌 국제영업무대에 무더기로 경쟁자가 생긴 것이다.

시장개방이라는 순기능과 함께 신용도의 하향평준화가 발생했고 일부
종금사는 해외금융기관으로부터 정크본드를 끼워팔기 당하면서까지 외화
영업에 나서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나라종금 이재우 상무는 "외국계 금융기관이나 국내은행이 종금사에 외화를
빌려줄때 꺽기할 부실채권 리스트를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며 "외화차입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신용도에 타격을 입을까 우려한 일부 종금사가
울며 겨자 먹기로 꺽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원화와 외화부문 부실이 위험수위에 이르면서 부실종금사의 정리가 눈앞에
다가왔다.

정부는 자기자본관리제도를 시행, 부실종금사의 인수합병 등을 추진할
방침을 밝힌바 있다.

과거에도 부실종금사 정리가 있었다.

그러나 개별종금사의 부실 해결차원에 그쳤던 탓에 은행인수나 신용관리기금
관리를 통해 구제된게 전부다.

하지만 기아사태로 불거진 종금사 부실은 업계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인수합병및 시장에서의 퇴출을 근간으로 한 구조조정을 통해 종금
업계의 재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오광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