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용산구 등 인기 주거지에 들어서는 ‘하이엔드(고급) 오피스텔’ 사업이 자금난으로 차질을 빚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약 2년 전부터 이어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기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데다 미분양 등이 겹치며 자금 조달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일부 사업장은 잇달아 공매에 나오며 사업 존폐 위기에 몰렸다. 설계 변경 등에 분양 일정을 미루는 단지도 나왔다.
청담·한남 '고급 오피스텔' 한파…자금난에 존폐 위기

하이엔드 오피스텔 시장 얼어붙어

1일 개발업계에 따르면 강남구 청담동 131의 16에 짓던 ‘청담501’(옛 리카르디 아스턴 청담)은 지난달 말 공매가 시작됐다. 최저 입찰가 534억8700만원에서 시작해 차수별(5차까지)로 10%씩 가격을 낮추는 방식이다. 이 사업장은 브리지론(초기 토지비 대출) 만기 연장만 거듭하며 본PF 착수에 실패해 공매로 넘어간 사례다. 지난해 6월에도 토지 소유주와 대주단 간 갈등으로 기한이익상실(대출금 조기 회수)이 발생해 공매로 나온 곳이다. 당시에는 네 차례 공매가 유찰되다가 시행사 신유씨앤디(옛 아스터개발)가 토지주 지분을 전량 인수해 사업 좌초는 면했다.

청담501은 대형 오피스텔 12실(전용면적 172~206㎡) 등으로 설계했다. 한 층당 한 실만 사용하도록 해 상류층을 겨냥한 초고급화를 노린 곳이지만, PF 위기 등에 사업이 차질을 빚었다.

신유씨앤디가 서초구 잠원동에서 사업을 추진 중인 슈퍼 펜트하우스 ‘아스턴55’ 역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림건설의 100% 자회사인 한림대부개발이 1500억원 규모의 선순위 채권을 인수해 사업 정상화 기대가 일고 있다. 아스턴55는 전 가구 한강 조망이 가능한 펜트하우스로 설계했으며 최고 분양가가 800억원에 달해 주목받았다.

청담동 도산대로와 맞닿은 부지에 있는 ‘루시아 청담 514 더테라스’도 심각한 미분양에 사업 부실 우려로 공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25가구와 오피스텔 20실로 설계된 단지다. 내·외관과 커뮤니티, 주거 서비스 등을 차별화해 하이엔드 단지를 선보일 계획이었다. 오피스텔 최고 분양가는 27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초 공매로 나온 이후 대주단과 브리지론 만기 연장에 합의해 사업이 정상화하는 듯했으나 미분양 문제 등으로 첫 삽을 뜨지도 못했다. 개발업계 관계자는 “토지를 비싸게 사서 고분양가를 피할 수 없어 사업이 더욱 힘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업 재구조화 나선 단지들

용산 유엔사 부지 복합개발사업으로 지어지는 ‘더 파크사이드 서울’은 분양 시기가 계속 밀리고 있다. 한남1구역 근처인 용산구 이태원동 22의 34 일대에 지하 7층~지상 20층 규모의 아파트 420가구, 오피스텔 723실, 판매시설, 숙박시설(호텔) 등을 짓는 사업이다. 지난해 오피스텔만 먼저 분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고금리, 시장 침체 등에 시기를 계속 미뤄왔다. 최근엔 발코니 확장 등 설계 변경도 진행 중이다. 시행사 용산일레븐은 시장 상황을 보며 분양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분양이 내년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PF 경색이 이어지자 사업 존폐 위기에 몰리는 하이엔드 주택 사업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강남구 논현동 114 ‘포도 프라이빗 레지던스 서울-인테리어 바이 펜디카사’는 당초 시행사가 지난달 착공을 목표로 추진했으나 본PF 전환이 어려워 사업 재구조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이곳은 아파트 29가구, 오피스텔 6실 등으로 설계됐다.

강남구 신사동에 추진되는 26가구 규모 고급 주택(더 피크 도산) 사업도 착공이 미뤄지고 있다. 브리지론 만기를 앞두고 본PF 전환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업계 관계자는 “과거 부동산 활황기에 초고가 주택, 오피스텔 사업에 뛰어드는 디벨로퍼가 크게 늘었지만 시장이 얼어붙으며 어려움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