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단지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 아파트단지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방배13구역 재건축이 착공을 앞두고 부지 내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소송에서 패소한 업체가 ‘버티기’에 나섰지만 인허가권자인 정부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법의 미비점과 각종 사각지대로 도심 개발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지적한다.

2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방배 13구역은 현금청산 대상부지를 소유한 비파과검사업체와의 갈등으로 착공 등 향후 일정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 조합이 매도청구소송 끝에 대법원판결까지 이겼지만 업체가 방사성물질을 이전하거나 폐기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지난달 건축심의를 통과한 이 사업장은 상반기 중 철거를 마치고 하반기 착공한다는 목표였다.

방배동 537-21에 있는 해당 토지 및 건축물은 조합의 명도소송 승소로 이달 초 조합으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문제는 지하 1층 저장시설에 보관된 방사성동위원소 및 방사성폐기물이다. 섣부르게 공사를 하면 방사성 물질이 흘러나올 수 있다는 우려로 업체에 자발적인 이전(폐기)을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있다.

허가권자이자 원자력 안전 업무를 총괄하는 원자력위원회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원자력위원회는 조합에 “보안규정은 허가받은 업체가 원자력안전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스스로 준수해야 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합은 대법원까지 이겼는데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속을 태우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방사능 오염 위험이 있을 때 감독기관이 보안관리계획을 명령하고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며 “대행업체라도 지정해주면 처리비용은 조합에서 대겠다고 하는데도 ‘권한이 없다’는 답변뿐”이라고 주장했다.

원자력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보안 관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확인돼 특별점검을 진행하고 필요시 행정조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재건축 재개발에서 떼법으로 법원 결정이 무력화되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나온다. 성북구 장위 10구역 재개발은 높은 보상비를 요구하는 사랑제일교회와 갈등으로 무려 7년이나 시간을 허비했다. 명도소송에서 3심까지 이겼는데 교회 신도들의 방해로 철거에 실패해서다. 조합은 결국 교회를 제척하는 변경계획안을 올해 초 확정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 법적으로 승소해도 버티기에 나서면 손쓸 방법이 없다”며 “학습효과로 더 악질적인 알박기기 기승을 부리는 악순환”이라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