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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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누가 대문을 심하게 두드렸다. 대문 밖에서 모르는 사람이 아버지가 다리에서 떨어졌다고 소리쳤다. 어머니와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면사무소에서 오는 길에 있는 섶다리 아래 개울에 사람이 떨어져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리에서 떨어진 거 같았다며 단숨에 얘기한 그분은 술이 많이 취해 건져 올리긴 했지만, 모시고 오려 했으나 막무가내여서 두고 왔다라고 알려줬다. 중간쯤에서 만난 아버지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며 컴컴한 밤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자전거는 앞바퀴가 휘어져 탈 수 없었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그 날부터 아버지는 평생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기억을 되살린 건 내가 대학 다닐 때였다. 술 취한 나를 친구들이 부축해 밤늦게 골목에서 노래 부르며 집에 들어왔다. 마당에다 먹은 술과 음식을 토해냈다. 어머니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걸 막아선 아버지는 마루에 꿇어앉으라고 했다. 옆으로 쓰러질 때마다 대나무 막대기로 마룻바닥을 내리쳐 바로 앉으라고 했다. 필기구를 내주며 아버지는 오늘 술 먹은 일을 빠짐없이 적으라고 했다. 썼다가 지우고, 옆으로 쓰러졌다가 아버지가 대나무로 바닥 치는 소리에 놀라 일어나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날이 밝을 때쯤에야 몇 장짜리 소위 술 먹은 그날의 보고서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아버지는 읽지는 않고 내가 쓴 종이를 들고 보태고 뺄 얘기가 더 있느냐고 물었다. 정신이 돌아온 내가 없습니다라고 하자 하신 말씀이다. “이기지 못할 술이면 마시지 마라. 술이 너를 이긴다. 술은 기호식품(嗜好食品)이다. 좋아하는 음식이니 즐길 줄 알아야 하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십수 년 전 다리에서 떨어진 그 날을 떠올렸다.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이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린 일이 후회돼 그날부터 더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음주는 일시적인 자살이다. 음주가 주는 행복은 단순히 소극적인 것, 불행의 일시적인 중절(中絶)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평생 기억해 지켜온 저 말을 이번에 찬찬히 찾아보니 버트런드 러셀이 한 말이다. 이어 네가 쓴 이게 너의 음주 성적표다. 절제해야 할 정도(程度)를 나타낸 거다. 오늘을 기억해 그 주량을 가늠해라라고 가르쳤다.

아버지는 공자백호(孔子百壺)라고 들어봤을 거다, 공자가 술을 무척 즐겨서 백 병 술을 기울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가 말한 술을 마실 때는 일정한 양이 없었는데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唯酒無量不及亂]’라는 말에서 꾸며 낸 전설일 뿐이다라고 했다. 공자의 일상생활을 기록한 논어(論語) 향당편(鄕黨篇) 8장에 나온다. 아버지는 저기서 비롯된 고사성어 유주무량(唯酒無量)’이야말로 공자의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을 음주 정도를 밝힌 거다라며 절제(節制)를 강조했다. 이어 아버지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도 저런 추태를 보이는데 싫어하는 음식을 먹을 땐 어떨까 하는 평가를 남들이 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술에 취해 정신없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추태를 주정(酒酊)’이라고 한 아버지는 선을 넘지 말라고 했다. 이어 공자가 말한 주곤(酒困)’술을 마셔 마음이 산란해지는 상태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괴로울 곤()’을 파자해 “‘나무 목()’우리 구()’ 안에 갇혀 자라지 못하고 난처하게 된 모양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인용한 고사성어가 불위주곤(不爲酒困)’이다. 술이 곤드레만드레 되어 난폭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술 때문에 곤경을 겪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의 이 말은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 나온다. 공자가 말한 원문은 이렇다. “나가서는 벼슬 높은 이를 섬기고, 들어와서는 어른들을 섬기며, 상을 당했을 때는 감히 정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고, 술 마시고 실수하지 않는 일[不爲酒困]과 같은 것은,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정도를 넘지 않게 조절해 욕구를 제한하는 절제는 자제력에서 나오고, 자제력을 키우는 방법은 자기 훈련뿐이다. 아버지는 자기 훈련은 자신의 욕구나 습관을 조절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돕는다라며 명심하라고 했다. 자제력은 인내심에서 나온다. 오랫동안 연습하지 않으면 쉽게 얻을 품성이 아니다. 가까이 있는 술이 유혹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손주들에게도 꼭 물려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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