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텐' 매장 많이 보이더니 1조 잭팟 눈앞…유니클로 잡는다
고물가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의류를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가 약진하고 있다. 유니클로, 자라 같이 패스트패션의 대명사로 불렸던 해외 브랜드보다 탑텐, 스파오 등 토종 브랜드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도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리고, 애슬레저, 키즈 등 해외 브랜드에서 볼 수 없었던 제품군을 강화한 것이 비결로 꼽힌다.

7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신성통상이 운영하는 탑텐의 작년 매출은 약 9000억원으로 2022년 대비 15% 이상 늘었다. 올해 1분기 매출도 전년 동기보다 1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신성통상 관계자는 “지금 추세라면 올해 사상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매출 1조원을 달성한 SPA 브랜드는 유니클로 한 개뿐이다. 유니클로 국내 운영사인 에프알엘코리아(회계연도 매년 9월~이듬해 8월) 매출이 2019년 1조3781억원에서 지난해 9219억원으로 줄어든 사이 탑텐 매출은 170%가량 급증(3340억원→9000억원)했다.

이랜드월드의 스파오는 작년 매출이 4800억원으로 2022년보다 20%가량 늘어난 데 이어 올해 1분기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했다. 올해 목표 매출은 6000억원이다. 삼성물산의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도 지난해 3000억원의 매출을 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가성비 좋고 트렌디한 상품을 계속 내놓은 전략이 적중해 매년 최대 매출을 경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토종 SPA 브랜드의 성장 원동력은 오프라인 매장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매출이 떨어진 해외 브랜드들이 매장을 접은 것과는 반대였다. 2019년 전국에 180개가 넘었던 유니클로 매장은 한·일 갈등으로 인한 불매 운동과 코로나 여파로 줄줄이 폐점해 현재 130개로 줄었다.

가장 공격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늘린 곳은 탑텐이다. 2019년 320개에 불과하던 매장 수는 작년 말 690개로 두 배로 늘었다. 지난해만 135개 신규 점포를 열었다. 작년 초엔 경기 고양시 일산차병원 안에 184㎡ 규모 매장을 새로 열었다. 백화점이나 아울렛 시장만 보지 않고 숨은 소비자 수요를 찾아 새 상권을 개척한 것이다.

탑텐은 애슬레저 라인인 ‘밸런스’와 유아를 위한 ‘탑텐 베이비’를 잇달아 선보이며 전 연령대가 입는 ‘에이지리스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2019년 92개였던 매장 수를 지난해 108개로 늘린 스파오도 올해 42개 신규 점포를 낼 계획이다.

토종 SPA 브랜드들은 ‘초저가’라는 경쟁력도 갖고 있다. 스파오 면 티셔츠(7950원)와 윈드브레이커(3만9900원), 냉감 속옷(9900원) 등 주요 제품은 유니클로보다 20~50% 저렴하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경기 둔화에 따른 소비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토종 SPA 브랜드가 가진 가격 메리트가 돋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도 SPA 브랜드인 무신사 스탠다드 전용 오프라인 매장을 잇달아 열며 토종 브랜드 대열에 가세했다. 무신사가 지난 3월 말 문을 연 ‘무신사 스탠다드 롯데몰 수원’은 개장 한 달 만에 매출 10억원을 넘어섰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