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가 지난 11일 미국 뉴저지 포트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가 지난 11일 미국 뉴저지 포트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미국도 정치권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간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교 경제 안보와 관련된 국익 앞에선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있죠. 한국 정치권도 분열할 때가 아닙니다.”

지난 11일 미국 뉴저지 포트리에서 만난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 말부터 꺼냈다. 김 대표는 1985년 유학 차 미국으로 건너간 뒤 1996년 KAGC를 설립해 미국 내 한인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해왔다. 그 과정에서 다져온 워싱턴 정계 인맥으로 한인을 위한 주요 과제를 해결한 공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국이 4·10 총선 후폭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글로벌 정세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을 가장 우려했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외교 리스크를 어떻게 극복할지 힘을 모아야 할 때란 점을 강조했다.

▷한국은 4·10 총선 후폭풍이 큽니다.

“앞으로 미국 대선이 전 세계 정치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한국 정치권도 선거 후폭풍에서 벗어나 미국 대선 리스크 대응 방법을 두고 힘을 모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한국 정치권이 미국 정치권과 편향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 한국에서 진보 성향의 정치인은 미국에서 민주당 의원만 만나려 하고, 보수 정치인은 공화당 사람만 만나려 합니다.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폭넓은 네트워크를 쌓아야 합니다.”

▷미국 대선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미국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등 국익에 관련된 법은 이견 없이 의회를 통과시켰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중 누가 당선돼도 경제정책만큼은 국익을 위해 비슷한 기조를 이어갈 겁니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노선이 너무 다른데요.

“하지만 두 정권 모두 중국을 견제하는 기조는 일치했습니다. 한국도 외교 전문가들이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모여 협의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미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기시다 총리가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 나섰지만 과거사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미·일 관계가 돈독해지고 있는 만큼 한국이 여기서 제외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지요.”

▷국내에서 초당적 협력은 말만큼 쉽진 않습니다.

“결집과 연대를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결집력이 세긴 하지만 동시에 의견이 다르더라도 필요할 때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연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4·10 총선처럼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할 경우 연대가 쉽지 않을 텐데요.

“강자가 약자를 더욱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선거 기간엔 같은 당끼리 결집해야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엔 상호 연대를 통해 국정을 운영해야 합니다.”

▷미국 정치권은 그런 문화가 형성돼 있습니까.

“미국 정치인들은 지역사회 바닥에서부터 다져 올라가면서 시의원, 하원의원, 상원의원으로 도전하는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그 과정에서 토론과 협상 능력을 훈련할 수 있지요.”

▷한국 정치인들이 이 같은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 정치권에선 인재 영입 관행에 따른 폐해가 작지 않습니다. 인재 영입에 지나치게 기대다 보면 갈등 상황에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 영입이라는 장점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있지요. 하지만 인재 영입으로 정치권에 들어오게 된 인물은 자신을 끌어준 정치인에게 소신 있게 견해를 펼치기 힘들 수 있습니다. 권력에 대한 쓴소리와 견제가 없다면 한국 정치권의 최근 문제인 팬덤 정치가 사라지기 힘들지요. 정책의 내용을 따지지 않고 막무가내식 막말·혐오 정치가 판칠 수 있습니다.”

▷미국 사회도 중동전쟁 등 이슈로 갈등하고 있지 않나요.

“토론 문화가 살아 있는 미국에서도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가자 전쟁을 둘러싼 갈등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지요. 반유대주의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치의 양극화도 심각한 수준이지요.”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준입니까.

“특히 반유대주의와 중동전쟁이 11월 대선의 큰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분열하고 있는 것인가요.

“어른 혹은 정부라는 권위 있는 존재가 주장하는 대로 젊은 사람들이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을 펼치는 점은 갈등의 요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달라진 트렌드입니까.

“유튜브와 틱톡의 영향이라고 봅니다. 젊은이들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자신의 정치 성향을 독립적으로 세울 기회가 생긴 셈이지요. 저처럼 한인 사회를 대변하는 사람으로선 반가운 일입니다.”

▷미국의 정치를 오래 본 입장에서 한국 정치의 강점은 뭔가요.

“한국의 선거제도는 정권에 대한 성적표를 신속하고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비판이 선거의 승패로 바로 나타나는 것은 정치인들을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강점이 되지요. 미국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입장에선 국민들이 정치권에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점이 부럽습니다.”

"바이든·트럼프 초접전…적은 표 차이로 승부 갈릴 것"
김 대표가 보는 미국 대선 판세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한국 정치권으로부터 미국 대선과 관련한 문의를 받는 일이 최근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오랜 기간 풀뿌리 로비스트로 활동해온 영향이다. 그는 워싱턴DC를 중심으로 미국 전역의 여론 동향에 밝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앞서 예측해 주목받기도 했다.

김 대표는 “지금 시점으로 잘라서 말한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42~43개 주의 선거인단이 누구를 선택할지는 지역 정치색에 따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의 관건은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애리조나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등과 같은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로 불리는 경합 주에서 누가 더 많은 지지를 받느냐다.

김 대표는 “기존 유대인들은 민주당 지지자가 많았지만, 최근 가자지구 문제로 민주당에서 돌아선 이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아랍계 사람들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정책을 반대하고 있다. 지난 2월 민주당의 미시간 프라이머리에서 ‘지지 후보 없음’이란 표가 10만 표 넘게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 지지층 가운데 15%는 젊은 세대와 소수 인종 등인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도 이들이 주도했다. 김 대표는 이들이 바이든 대통령 지지 집단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낙태 금지법과 관련해 최근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도 젊은 세대와 소수 인종 표심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2020년 미국 대선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속에서 ‘우편 투표’로 치러진 탓에 정확한 표 집계가 어려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행정 시스템과 선거 제도는 생각보다 허술해서 우편으로 투표한 사람이 투표소에 가서 또 투표한다든지, 다른 주소지에서 투표한다면 이를 100% 걸러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올해 대선에서도 적은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타임스(NYT)와 시에나대가 13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양자 대결 지지율에서 트럼프는 46%, 바이든은 45%로 오차범위(±3.3%포인트) 안에서 초접전을 벌이고 있다.

■ 김동석 대표는…
FTA 등서 한인 의견 반영 주도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면서 고(故)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민주화운동청년연합 활동을 하다 1985년 도미했다. 1994년 LA 폭동 사태 때 미국 사법당국이 한인에게 피해를 준 흑인들을 적절하게 사법처리하지 않는 것을 보고 1996년 한인유권자센터를 세웠다. 이후 미 연방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 의회 비준 등에서 한인들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여론을 주도했다. 최근 미국 내에서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있는 약 2만 명의 한인 입양아가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 뛰고 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